'글로벌 톱5'인 현대기아차는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으로의 후계 승계가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장애물이 도사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안티 현대(차)'다. 이는 정몽구 회장 비자금사건, 연료소비율(연비) 과장, 국내고객 무시정책 등으로부터 파생됐다. 특히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연비 과장으로 소비자들에게 무려 4200억원을 배상주기로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연비 과장 표시에도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에서도 리콜 시정률이 25%대에 불과해 우리나라 소비자를 '봉'으로 보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과연 '안티 현대'의 쓰나미를 정 부회장이 경영권 대물림 과정에서 극복하고 '현대차의 국민기업화'을 이뤄낼 수 있을까.
▶현대기아차,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비 과장으로 5000억원 물어줘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혼쭐이 났다. 연비 과장 표기로 미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줄소송을 당한 것.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1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자동차중 13개 모델에 대해 연비 하향을 권고했다. 13개 차종은 현대차의 엘란트라·소나타(하이브리드)·액센트·그랜저·제네시스·투싼·벨로스터와 기아차의 쏘렌토·리오·쏘울·스포티지·옵티마(하이브리드) 등이다.
이후 현대기아차 차량 구매자들이 민사소송을 연이어 제기했고, 이 소송은 로스앤젤레스(LA) 연방법원에 모두 병합됐다. 미국 법원은 현대기아차에게 모두 3억9500만달러(약 4200억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 선고에 따라 현대차는 2011~2013년식 모델 차량 구매자들에게 모두 2억1000만달러를, 기아차는 1억8500만달러를 각각 지급하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월 캐나다에서도 집단 민사소송을 당했다. 결국 캐나다 소비자들에게 7000만 캐나다달러(약 680억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같은 현대기아차의 연비 표기 오류는 미국·캐나다의 연비 시험 절차 규정에 대한 해석과 시험환경 및 방법을 현대차와 기아차가 잘못 해석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현대기아차 , 국내 소비자 '봉' 취급… 정·관계, '뻥 연비' 배상 추진
지난 2012년 말부터 이런 보도가 잇달으면서 국내에서도 "우리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거친 노면에서 연비를 측정하는 것과 현대차 트랙의 노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연비 과장은 보상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연비 과장 표기 배상은 관련 규정 미비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소비자가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지난해 말 패소했다. 그러나 미국 포드의 경우 지난 2012년 12월 미국 '컨슈머리포트'에 C-Max 하이브리드 연비 과장이 보도되자 자발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즉, 연비 제원을 정정하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금전적 보상도 했다. 현대기아차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현대기아차의 이런 '나 몰라라' 때문에 정·관계가 '뻥 연비' 배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이 이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 이 법안은 빠르면 이달 중으로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이종진 의원실은 "자동차 연비가 과다 표시되는 경우 이를 신뢰하고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되나 현행법은 보상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라며 "이에 연비 표시가 부적합할 때 시정조치를 안할 경우 경제적 보상을 하도록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처럼 과장 연비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다만, 보상 금액이 수천억원 수준이라 제조업체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가 연비 과다 표시에 대해 개선 의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연비 과장 표시뿐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리콜 시정률이 저조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2012년 엑센트 950대에 대해 전기합선으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으로 리콜을 시작했는데, 리콜 차량이 235대(25%)에 그쳤고, 같은 해 10월 브레이크 성능저하 가능성으로 리콜을 실시한 제네시스 역시 전체 9100대 가운데 26%만이 리콜을 받았다.
리콜에 응한 차량 소유자가 이처럼 적은 것은 현대차가 리콜 명령을 받고도 이를 차량 소유자에게 우편으로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명 '수타페' 문제도 국내 소비자로부터 얼마나 불신을 받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수타페는 '물이 새는 산타페'를 네티즌들이 현대차를 조롱하면서 붙여준 명칭이다. 지난해 6월 출시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형 싼타페 트렁크와 뒷좌석에 물이 샌다는 글이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뒤 비슷한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이를 무시하던 현대차는 언론에서 집중 조명을 하자 그제야 무상 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결국 현대차는 지난해 8월 1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현대차가 국내 고객들에게 품질 문제로 사과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국내 소비자뿐만 아니라 잠재 고객까지도 현대차를 불신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티 현대,수입차 공세 등으로 현대기아차 국내 시장 점유율 하락
이런 이유로 지난해부터 안티 현대(차)의 불길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안티 현대(차)'가 검색어 자동완성으로 등록돼 있을 정도다. 온라인상에서 차 품질과 관련해 현대기아차를 비난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이런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예컨대 김충호 현대차 사장은 지난 4월 '국내에서 안티 현대 바람이 거세다'는 지적을 받은 뒤 "현대차가 매년 여러 문제를 겪는데 노사문제가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가 빗발치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김 사장 발언이 전해지자 일부 네티즌들은 "정몽구 회장 비자금사건,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불법파견(하청업체 근로자를 사내에서 일하게 하는 것으로 대법원은 이들 파견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음), 편법 승계, 연비 허위과장 문제, 수타페 문제, 국내고객 무시정책이 안티 현대의 이유"라고 꼬집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수입차업체들의 공세가 워낙 강한 것도 있겠지만 안티 현대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2012년 71.6%에서 2013년 68.7%로 처음 70%선이 깨지더니, 올들어서는(1~5월) 65.9%로 급락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2~3년 안에 60%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안티 현대의 물결이 거세지는 마당에 이제 더 이상 '애국심'에 호소해서 판매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정의선 부회장은 아버지인 정 회장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맞닥뜨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글로벌기업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고 국내에서는 안티 현대라는 반(反)정서와 수입차 공세에 맞서야 하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국내외의 장애물 극복이 후계 승계는 물론이고 총수 등극 후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완제기자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