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0년 만에 오른 결승 무대, 라 데시마(La Decima, 10번째 우승)를 지켜봐야 했다. 25일 새벽(한국시각) 포르투갈 리스본의 에스타디오 다 루즈에서 열린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AT 마드리드(이하 AT)가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에 4-1로 무너졌다. 끝까지 남자답게 싸우며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작지만 큰 변수'는 그들에게 빅이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디에고 코스타가 일주일 전 바르셀로나전처럼 또다시 경기 초반 교체 아웃됐다. 시메오네 감독이 이 선수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터. 그럼에도 선발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건 단판 승부의 심리전에 무게감을 싣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최대한 오래 버텨주길 바랐을 코스타 카드는 전반 9분 만에 폐기됐다. ?플랜B로 선회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뒀지만, 플랜 A의 효력을 거의 보지 못하고 노선을 바꾼 건 막대한 손실이었다. AT가 교체 변수로 어수선한 시간대를 보낸 동안 레알은 라모스-바란 라인이 중앙선 인근까지 전진했고, 볼 점유율을 높여갔다.
레알의 빌드업은 주로 왼쪽을 거쳤다. 호날두-디마리아-코엔트랑으로 구성된 삼각형이 공격의 시발점이 됐다. 코엔트랑이 드리블을 치는 방향과 호날두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른 삼각형이 여러 개 형성됐다. 호날두와 코엔트랑이 앞뒤-좌우로 섰을 땐 디 마리아가 내려왔고, 코엔트랑이 뒤를 커버할 땐 디 마리아가 직접 속도를 내 공간을 치고 들어갔다. 여기에 벤제마가 등을 지고 어깨 싸움을 하며 패스를 투입할 꼭짓점을 늘렸다. 단, 가르시아와 후안프란이 앞뒤로 선 해당 진영을 완전히 허물지는 못했다. AT가 최전방-최후방 라인을 30m 내외로 좁혀 공간을 주지 않자, 레알은 주무기인 속도가 죽었다.
팽팽한 균형이 깨진 건 전반 36분 AT의 코너킥 상황. 후안프란의 머리를 맞고 다시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흐른 볼은 궤적이나 낙하지점 자체가 그리 까다로운 건 아니었다. 다만 카시야스가 활동 범위를 넓히려 한 시점이 고딘과 케디라가 공중볼 경합을 막 시작?한 뒤란 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쿠르트아보다 비교적 한가했던 카시야스의 판단에 착오가 있었던 장면. 직접 몸을 날리면서 방어하기보다는 최종 수비 라인을 리딩하고, 뒤로 흐르는 백패스를 처리하는 게 대부분이었던 이 선수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앞서나간 볼 점유율은 실점 앞에서 무의미했다.
AT가 정녕 무서웠던 건 후반전부터다.? 레알이 볼을 돌리며 공격을 시작할 때, 중계 화면 하단부에는 시메오네 감독의 모습이 계속 잡혔다. 레알 진영을 향해 쉼 없이 팔을 휘젓던 그는 지속적인 전방 압박을 요구했고, 아껴둔 힘을 남김없이 쏟아낼 요량이었다. 필리페 루이스와 후안 프란이 공격 가담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측면에서의 뒷공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줄었다. 그렇다고 중원을 내준 것도 아니었다. 티아고-가비 라인은 고딘-미란다 라인의 앞 공간을 틀어막았다. 이스코와 마르셀로를 투입한 안첼로티는 디 마리아를 왼쪽 깊숙이 돌려 크로스를 맡겼고, 호날두와 벤제마는 박스 내에서 높이 싸움에 관여했다.
이 상황에서의 중대한 변수는 시메오네 감독의 '굳히기 시간대'. 레알은 바란과 라모스까지 공격에 관여할 만큼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고, AT는 1차 수비 저지선을 7~80분대까지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모든 힘을 짜낸 정면 승부는 화끈했지만, 수비벽에 생기는 균열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디 마리아의 크로스가, 베일의 드리블이 살아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상대의 공격 템포를 꺾어놓지 못한 AT는 숨 고를 시간대를 놓쳤고, 공간을 내주고 치고받는 격렬한 양상에 힘겨워했다. 결국엔 93분에 내준 코너킥에 주저앉았다. 쿠르트아의 피지컬이 뛰어나다고 해도 옆 그물을 찌르는 라모스의 헤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심리적-육체적으로 무너질 공산이 농후했다. 한 골을 지키는 게 아닌, 한 골을 더 넣어야 하는 경기는 부담이 컸다. 라리가 끄자락까지 우승 경쟁을 한 데다 일주일 뒤 치른 이번 결승전에서도 쉽게 물러서질 않았다. 코스타에 써버린 교체 카드는 연장전에 접어들며 더욱 아른거렸다. 근육에 이상을 드러낸 선수가 여럿 보였고, 두 번째 골 실점 이후에는 수비로의 전환 과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15km가량을 뛴 AT의 허리는 마르셀로의 드리블을 전혀 견제하지 못했고, 여기에 PK 실점까지 내줬다. 그들만의 방식대로 잘 싸웠으나 몇몇 변수에 끝내 발목을 잡혔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기에 더욱 아쉬울 법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