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전혀 안났어요. 정말 웃겨서 웃었어요."
21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었다. 상황은 LG가 1-0으로 앞서던 4회초. 2사 후 1번 박용택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타석에는 2번 박경수. 2사 상황이기 때문에 발빠른 박용택이 도루를 시도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날 전체적으로 구위가 떨어졌던 양현종의 입장에서는 박용택이 2루로 가면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타 1개면 점수차가 벌어지기에 양현종은 박용택을 1루에 묶어야 했다.
여기서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긴장한 양현종이 박용택을 상대로 연속 7개의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박용택은 계속 슬라이딩하며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오죽했으면 6개째 견제구가 날아간 후 우효동 구심이 양현종을 불러 주위까지 줬다. 그런데 또 견제가 날아가자 LG 양상문 감독이 우 구심에게 가벼운 어필을 하기도 했다. 결국 양현종은 더이상 견제구를 던질 수 없었고 박경수와의 승부에 집중했는데,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 2루로 뛰던 박용택은 힘든 와중에도 사람좋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각자의 속사정들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내면 정말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먼저 박용택의 입장이다. 사실 주자 입장에서는 투수가 견제를 계속하며 체력 소모가 심해지고,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만약, 투수가 자신을 놀린다는 느낌을 받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박용택은 양현종과의 상황에 대해 "화는 전혀 나지 않았다. 이닝 종료 후 정말 웃겨서 웃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슬라이딩 훈련을 하고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박용택은 "왼손투수기 때문에 표정을 보면 안다. 내가 누상에 나가자마자 '절대 2루에 보내면 안된다'라는 표정이 보이더라. 그 때부터 견제가 많이 날아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다"고 밝혔다. 투수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베테랑 박용택은 잘 알고있었다. 여기에 경기 후 동료들을 통해 양현종이 왜 그랬는지를 전해듣고 더욱 재밌어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양현종의 입장이다. 양현종도 자신이 그렇게 많은 견제구를 연속으로 날릴지 몰랐다. 하지만 꼭 주자를 묶어야 한다는 생각에 연속 3개의 견제구를 던졌다. 거기서부터 소위 말하는 '멘붕'이 왔다고 한다. '연속 견제를 했으니 이번에는 주자가 무조건 뛰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감쌌고, 그래서 또 견제구를 날린게 수차례 반복된 결과였다. 결국 우 구심에게 시간지연으로 인한 주의를 받고서는 '마지막 반항'을 하고 견제를 멈췄다. 이 견제의 효과 때문이었는지 박용택은 결국 도루를 시도하지 못했다.
사실 견제는 투수의 권한이다. 몇 번의 견제를 한다고 해도 규칙상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 심판은 양현종에게 주의를 줬다. 너무 지나친 견제는 경기 시간 지연 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경고를 주거나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심판이 주의를 줄 수는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 감독은 왜 어필을 하러 나간 것일까. 양 감독은 "주의를 받고도 또 한 번의 견제를 했다. 그래서 혹시 심판의 다른 조치가 있지 않을까 해서 확인차 나가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구심은 양 감독에게 "주자가 리드를 많이해 도루를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 상태에서의 견제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의를 주는 선에서 그쳤다"는 설명을 듣고 곧바로 덕아웃으로 복귀했다. 양 감독은 "기록은 모르겠지만 내가 야구를 하며 이렇게 많은 연속 견제구는 처음 본 것 같다"고 밝혔다.
광주=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