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축구의 키워드는 여전히 압박이다.
다양한 공격전술이 개발됐지만, 첫번째는 어떻게 상대를 압박하느냐 싸움이다. 포메이션 역시 압박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 발전했다. 1980년대 아리고 사키 감독에 의해 탄생한 압박축구는 21세기 들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지난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의 부활을 알렸던 도르트문트의 게겐프레싱이 대표적 예다. '반대의'라는 뜻의 게겐(GEGEN)과 '압박'의 프레싱(PRESSING)이 합쳐진 게겐프레싱은 전방 압박을 극대화한 전술이다. 사실 지난 몇년간 세계축구를 지배한 바르셀로나 역시 티키타카로 불리는 패싱게임 만큼이나 엄청난 전방 압박을 강조했다. '득점기계' 리오넬 메시는 엄청난 골수 만큼이나 볼을 뺏는 횟수도 많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압박축구는 수비를 강조한 재미없는 축구였지만, 21세기 들어서는 공격축구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선에서 볼을 뺏은 뒤 바로 역습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앞선부터 공격하듯 수비해 볼을 뺏은 뒤 그 자리에서 바로 공격작업이 이루어진다. 올시즌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압박과 역습을 극대화한 전술로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다.
K-리그의 템포가 다소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리그 팀들은 압박의 강도가 높지만, 압박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상대 골문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늦을 수 밖에 없다. 공격 전환도 매끄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그나마 선두를 달리는 포항이 최근 세계축구의 흐름과 비슷한 전방 압박과 빠른 역습 속도로 재미를 보고 있다.
포메이션은 여전히 4-2-3-1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 초반 스페인에서 시작된 4-2-3-1 열풍은 현재까지 세계축구를 지배하고 있다. 4-2-3-1을 발전시키거나, 대항하기 위한 전술도 속속 개발됐다. 대표적인 것이 제로톱이다. 제로톱은 바르셀로나를 통해 전술의 현재이자 미래로 자리매김했다. 올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시티는 현대축구에서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4-4-2를 재조명했다. 스리백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포메이션에 있어서 K-리그는 추세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클래식 대부분의 팀들이 4-2-3-1 전형을 쓰고 있다. 포항과 제주 등은 일찌감치 제로톱을 실험했다. 포항은 한단계 진화한 제로톱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서울은 올시즌 K-리그에서는 유일하게 스리백을 도입했다. 다만 완성도면에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현대축구는 무게 중심이 선수에서 감독으로 넘어가고 있다. 감독이 어떤 철학을 갖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확연히 갈린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돌풍을 이끈 디에고 시메오네나,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티키타카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을 보자. 이들은 체력훈련, 전술훈련, 팀리빌딩 과정까지 일괄된 철학과 시스템으로 팀을 이끈다. 천문학적 몸값의 슈퍼스타들도 그 규율 속에서 움직인다. 특급 선수들의 부재도 있지만, K-리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다. 이를 지원해줄 구단의 철학도 없다. 어찌보면 단순히 포메이션이나 전술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