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FA컵을 제패하면서 가능성을 보인 포항의 제로톱은 2013년 빛을 발했다. K-리그 클래식과 FA컵을 동시 제패하면서 프로축구 사상 단일시즌 첫 더블(2관왕)의 위업을 썼다. 올해도 바람은 계속되고 있다. 클래식 전반기 12경기를 1위로 마쳤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 FA컵 16강 진출 등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전반기 축구 평가에서 1위에 오른 포항축구, 진정한 지존이 되기 위해서는 더 필요한 게 있다.
▶제로톱, 철저한 계산의 산물
제로톱은 포항의 대표 브랜드다. 말 그대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원톱, 투톱을 없애고 2선 자원들로만 공격하는 형태다. 김승대가 표면적인 원톱이지만, 본업은 측면 공격수다. 김승대는 2선의 고무열 이명주 강수일(김재성 이광훈 문창진)과 수시로 자리를 바꾸면서 득점 기회를 찾는다. 중원에서는 손준호가 2선 지원 역할을 맡는 3선 공격을 수행한다. 수비적 임무도 김태수와 분업한다. 풀백 김대호(박희철 박선주)와 신광훈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중앙 수비 김광석-김원일이 자기 진영 방어 역할을 한다. 최전방부터 수비수까지 간격이 30m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35m인 타 팀보다 공간이 적다.
전통적으로 공격수는 대부분 1m80 이상의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포항은 이런 공식을 깼다. 고무열 강수일이 전방의 김승대(1m75)보다 크다. 이명주도 단신에 속한다. 그럼에도 김승대 이명주가 포항이 올린 공격포인트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배경은 빠른 발과 조직력이다. 고무열 또는 강수일이 헤딩으로 넘겨주는 공중볼을 이들이 받아 해결한다. 빠른 속도의 패스와 움직임이 가미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로 약점을 커버하는 포항식 생존전략은 소자본으로 팀을 꾸리는 시도민구단에겐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이명주와 변수, 그리고 히든카드
하지만 K-리그를 대표하는 '1등 축구'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하다. 더 높은 수준이 요구되지만, 한계가 있다. 전체적으로 팀들의 하향평준화 속에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올 시즌 전반기 이명주에 대한 의존도가 생각 외로 커졌다. 10경기 연속 공격포인트(4골-7도움)의 이면에는 역할을 대신해 줄 만한 선수가 없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김재성은 느리고 백업들은 너무 어리다. 일정이 빡빡한 7~8월 이명주가 부상 등 변수에 의해 제외될 경우 조직력이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
변수 대응 능력도 취약하다. 확실하게 다져진 주전과 백업 몇명을 제외하면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 여기에 승부처에서 내놓을 만한 히든카드가 없는 점도 고민거리다. 타 팀들은 외국인 선수들을 주로 활용한다. 그러나 포항은 국내 선수들의 조직력과 기량, 정신력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가장 큰 한계점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더 수준 높은 축구를 위해 능력있는 외국인 선수는 필수다. 이명주를 포함한 내부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포항의 축구는 정체될 수 밖에 없다.
▶유비무환
스틸타카가 후반기에도 빛날 지는 불분명 하다. 타 팀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포항은 현 전력으로도 충분히 1위 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 동안 밀린 살인적인 일정 소화 속에 발생하는 각종 변수가 겹치면 포항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날 수 있다. 실제로 포항은 지난해에도 7월 이후 흐름이 꺾이면서 9월 중순까지 울산에 선두자리를 넘겨주며 고전했다. 지난해에 비해 활용 선수 폭이 더 줄어든 올해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1위팀 포항에는 책임이 있다. 수준 높은 축구를 위해서, K-리그 발전을 위해 '우물안 개구리'의 틀을 깨야 한다. 전반기 1위 축구라는 평가가 진정한 1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다 넓은 시야와 투자로 무너지지 않고 발전하는 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