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년간 동하계 올림픽 금메달 86개 가운데 42개(49%)를 여자선수가 획득했습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8개 메달 중 7개(88.8%)를 여자선수가 따냈죠. 그런데 대한체육회 56개 가맹단체 중 여성이 협회장인 단체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4년 여성 스포츠리더 육성과정' 개강식, 장형겸 체육인재육성재단 대리가 돌발질문을 던졌다. "댄스스포츠협회, 대한럭비협회 단 2개뿐"이라는 답변에 여성 스포츠인들의 표정이 절로 비장해졌다.
여성스포츠인의 경력단절 해소, 여성스포츠 리더의 전문성 강화, 여성 스포츠인들의 네트워크 확대 등을 목표로 지난해 출범한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제2기 여성 스포츠리더 양성과정'에 엘리트 선수-지도자들이 몰린 이유도 이때문이다. 지난해 이 과정을 거친 '여자선배'들의 입소문이 퍼졌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당초 40명을 뽑으려던 계획을 수정, 47명의 역량있는 여성스포츠인들을 선발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변천사, 2002-2006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최은경,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 배민희 등 국가대표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물론, 여자 100m 기록보유자인 이영숙 안산시청 육상부 감독, '지소연, 박은선의 선배'인 유영실 동산정보고 여자축구팀 감독, 전현지 프로골퍼 등 쟁쟁한 여성 스포츠인들이 모두 '동기생'이 됐다.
김나미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은 "훌륭한 여성 인재들이 너무 많이 와주셔서, 선발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성 스포츠 인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힘든 일 아니냐, 향후 스포츠계 최강의 파워 엘리트 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업은 여성스포츠리더 과정(6주. 20명), 차세대여성스포츠인재 과정(10주, 27명) 두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스포츠차세대 과정은 27명 중 20명이 선수 출신, 이중 12명이 국가대표 출신이다. 스포츠 리더 과정은 20명중 17명이 선수 출신, 이중 절반인 8명이 국가대표 출신이다. 17일부터 첫수업을 시작했다. 강의실은 엘리트 선수 출신다운 꿈과 열정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윤영실 동산정보고 감독은 "여자축구 1세대로서 16년간 국가대표로 뛰었다. 동산정보고 감독으로 6년째 일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프로 라이선스 교육을 받으면서, 여성지도자로서 '명장의 꿈'을 꾸게 됐다. 여자축구연맹 회장 등 행정가의 꿈도 있다. 내가 현장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경험한 것, 발로 뛰며 배운 것을 정책적으로 채워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쇼트트랙 에이스' 변천사는 "2010년 은퇴한 이후 쇼트트랙처럼 좋아하는 일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새 목표가 생겼다. 2013년 7월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에서 스포츠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 외적으로 나를 더 성장시키는 기회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시간을 통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송희 SBS 리듬체조 해설위원(세종고 전임코치)은 "여자리듬체조 대표 코치로 일하면서 훌륭한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히려 스승으로서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배워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과정에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아영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 연맹 이사는 공부를 통해 변화한 생생한 경험담을 소개했다. "역도선수 출신이다. 역도기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봅슬레이, 스켈레톤으로 전향했다. 다 늘어난 오빠선수들의 옷과 헐렁한 스파이크, 렌탈 썰매를 빌려 미국대회에 출전했는데, 통역도 없고, 말도 안통하는 현장에서 한국 여자선수로서 설움을 느꼈다.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후 1년간 영어공부를 해서 토익 800점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봅슬레이 국제심판이 됐다. 지난해 핀란드 여성 스포츠인 컨퍼런스에도 다녀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출신의 여자핸드볼 선수 배민희는 "지난해 갑상선 수치가 떨어지면서 갑작스레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올림픽에도 나가고, 아시아선수권에도 나가며 내가 잘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운동을 그만두고 나니 그저 우물안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물밖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팀에 복귀했을 때 동료들에게 우물 밖 큰 세상을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리듬체조 선수출신으로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에서 일하는 조현지씨의 말엔 모두가 공감했다. "스포츠 현장에서 일하면서, 여자선배가 없다. 멘토가 없다는 점이 늘 서러웠다. 여기 오신 여성 스포츠인 모두 서로의 열정에 기름을 부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