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까지 진출하며 한국 배우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배두나. 그가 '도희야'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을 때 의아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저예산 영화인 '도희야'에 배두나가 쉽게 출연을 결정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하지만 배두나는 그런 배우다. 인기보다는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이 들면 여지없이 뛰어드는 배우라는 말이다.
"원래 작품 결정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도희야'는 그렇지 않았어요. 두 시간 시나리오를 읽고 한 시간 만에 '하겠다'고 했죠." 정주리 감독도 배두나의 이 같은 선택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정 감독 역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는 배우가 '도희야'에 출연을 결정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치 못했던 것. 하지만 배두나는 출연은 물론 '노 개런티' 선언까지 했다. "예산이 많지 않은 것을 아는데 개런티를 받겠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웃음) 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이창동 감독이 제작하는 영화라서 더욱 믿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창동 감독이 대본을 보내주셨어요. 그렇다고 감독님 때문에 선택했다기 보다는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해보고 싶었죠. 이창동 감독님의 안목을 믿긴 했지만요."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끝내고 '주피터 어센딩'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영어를 배우려고 런던에 머물렀거든요. 조금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다'라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외로움? 그래서 '도희야' 시나리오를 봤을 때 향수가 더 자극된 것 같아요."
'도희야'에서 배두나가 맡은 역할은 새롭게 부임한 시골 파출소장 이영남이다. 이영남은 자신의 감정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억누르고 있다. "솔직히 중간에 울분이 터질 것 같은 때도 있었어요. 특히 마지막 취조신은 마음이 너무 힘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초월해진 것 같아요. 자포자기랄까.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그것을 놓게 되는 타이밍이 오더라고요. 전체적으로 외로운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가슴에 응어리가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고 씩씩한 척 하는 인물이죠."
함께 호흡을 맞춘 김새론에 대해서도 여배우로서 최고의 칭찬을 했다. "저는 새론이를 아역이 아니라 상대 여배우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새론이 입장에서는 힘든 연기일 수도 있지만 새론이는 그쪽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벌써 터득한 경력자예요. 걱정보다는 도와주려고 했죠. 저도 어릴 때 데뷔했지만 제가 봤을 때 새론이는 아주 건강한 친구고 캐릭터와 자신을 분리하는 법도 잘 알고 있어요. 배우로서의 야망도 있는 친구라 오히려 놀랄 정도였죠."
송새벽에 대해서는 웃음부터 지었다. "처음 송새벽이 용하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릴 들었을 때 쾌재를 불렀어요.(웃음) 용하는 '방자전'의 변학도와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캐릭터거든요. 새벽이는 그런 광끼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많이들 아시잖아요. 예전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영화를 함께 촬영한 적이 있었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몇번 봐서 친구가 됐죠."
배두나는 '도희야'를 이미 2주전에 따로 봤단다. "제가 출연한 작품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못보겠어요. 부끄럽잖아요.(웃음)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잘 나오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최대한 감독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영화 자체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배두나는 워쇼스키 남매의 새 영화 '주피터 어센딩'의 촬영도 마쳤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좀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일단 훨씬 쉬워요.(웃음) 이야기도 한 가지고요. 주인공도 밀라 쿠니스와 채닝 테이텀으로 딱 정해져 있어요. 물론 워쇼스키 특유의 세계관과 비주얼적인 면은 있지만요. 저는 손미처럼 순수하고 여린 캐릭터가 아니라 좀 짓궂은 역할이에요."
'도희야'가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된 덕분에 배두나는 '공기인형'에 이어 또 다시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공기인형' 때 좋은 경험을 해서 더 설레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는 한국 영화로 가니까 더 기분좋고요. 가족 같이 소수정예로 찍은 영화인데 세계적인 영화제에 가니까 영광스럽죠. 일단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의 반응은 좋아서 한시름 놨어요."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