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배고팠다.
틈만 나면 발을 놀렸다. 집안에선 테니스공, 시장통에선 깡통, 돌멩이를 찼다. 발로 찰 수 있는 것들이면 족했다. 집안 액자와 골목 유리창이 성하지 않았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깨면 태연하게 전화번호가 담긴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고, 어머니가 변상하는 일상을 반복됐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고 있는 박주영(29·왓포드)의 천진난만한 유년시절이다.
▶3개월 설득해 얻은 타고난 천재
1995년 4월 대구 반야월초교 운동장. 학급대항축구대회 4학년 경기 심판을 보던 시덕준 축구부 감독(51)은 한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비수 두 명을 제끼더니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스피드 뿐만 아니라 탄력까지 좋았다. 축구부원도 아닌, 초등생의 재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알아낸 소년의 이름은 박주영이었다.
당시만 해도 박주영은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처음엔 부모 몰래 축구를 시작했다. 시 감독은 한 달간 축구부 유니폼을 박주영에게 빌려주면서 훈련을 시켰다. 아들이 방과 후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학교를 찾아왔다. 결국 축구부와의 밀월관계가 드러났다. "주영이 어머니가 어느날 아들 손을 붙잡고 와 '우리 아이는 운동을 시킬 생각이 없다'고 차갑게 말하며 돌아섰다. 돌아가는 모자를 향해 '운동을 잘해야 공부도 잘한다'고 외쳤지만, 조바심이 났다. '주영이를 다시 축구부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이튿날부터 시 감독의 구애가 시작됐다. 석달 동안 꼬박꼬박 박주영의 집을 찾아가 부모를 설득했다. 어려운 형편을 듣고 축구화, 유니폼 등 물량공세도 펼쳤다. 결국 부모가 백기를 들었다. "나중에 부모를 통해 들으니 어릴 적부터 집이나 시장통에서 눈에 띄는 게 있으면 발로 찼다더라. 뼛속부터 축구선수였던 것이다."
▶"쟤는 좀 빼고 하면 안돼요?"
반야월초 축구부원으로 거듭난 박주영은 물 만난 고기였다. 아끼던 축구화를 잃어버리자 '맨발로라도 공을 차겠다'고 나섰다. 타고난 골 감각을 만든 '맨발축구'의 시초였다. 시 감독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 이상을 하는 아이였다. 항상 웃었다. 어릴 적엔 볼을 기다리는 버릇이 있어서 가끔 싫은 소리를 해도 그때 뿐이었다"고 웃었다.
적수가 없었다. 월등한 기량으로 5,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자리를 빼앗긴 형들의 시기로 괴롭힘도 당했다. 하지만 곧 '살인미소'와 타고난 넉살로 형들을 휘어잡았다. 경기 때도 발에 얹어주는 '택배 패스'로 신망을 얻었다. 형들의 질투는 환호로 바뀌었다. 매 경기마다 5~6골을 넣는 박주영은 상대팀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시 감독은 "한 번은 경기장에 나서니 타 팀 감독이 주영이를 두고 '쟤는 다치지도 않느냐', '쟤 좀 빼고 경기하면 안되느냐'는 말을 하더라. 초등학교 무대에서 박주영을 막을 선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살인미소 다시한번
반야월초를 졸업한 뒤 청구중, 청구고를 거친 박주영은 FC서울을 시작으로 AS모나코(프랑스) 아스널(잉글랜드)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였다. 이 와중에도 박주영은 틈틈이 반야월초를 찾았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박주영의 부모 역시 지금까지 시 감독과 연을 맺고 있다. 1988년 반야월초에 부임한 시 감독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주영이가 대구에 내려오면 가족들과 함께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릴적 선생님을 잊지 않고 매번 찾아주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유소년 지도에 청춘을 바치면서 깊게 파인 주름에 미소가 번졌다.
박주영의 브라질행은 순탄치 않았다. 소속팀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마음고생으로 발등 염증까지 생겼다. 기어이 3번째 월드컵 도전에 나섰지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승은 그저 믿을 뿐이다. "다 큰 선수다. 산전수전 겪은만큼 잘 해낼 것이다." 하지만 시 감독에게 박주영은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다. "매번 경기를 볼 때마다 '다치지만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박주영은 브라질월드컵을 마치고 7월에 반야월초를 찾을 계획이다. 시 감독은 축구부원 가족들과 함께 대구에서 응원전을 펼칠 생각이다. 바람은 단 하나다. "그저 다치지만 말고 웃는 표정으로 돌아와주기 바란다. 부담 갖지 말고 가진 것을 모두 풀어냈으면 좋겠다." 대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