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이게 LG 트윈스의 현실이다.
LG 트윈스가 11일 양상문 신임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LG의 첫 번째 선택은 양 감독이 아니었다. 사실 LG는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 영입 1순위에 올려놨었고, 실제 영입도 타진했다. 하지만 결국은 양 감독이 LG 유니폼을 입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LG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실 LG는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려 했었다. 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염두에 뒀던 양상문 감독에게 감독직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LG는 남상건 사장이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체 부인했지만, 구단 차원에서 자리를 가졌던 것은 부인하지 못했다.
지난 7일 LG 수뇌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룹 고위층에서 감독 내부 승격에 대해 거부 의사를 나타냈고, 그제서야 LG는 새 감독 후보들과 접촉을 시작했다. 이 때 1순위로 거론된 후보가 바로 김 감독이었다. 실제로 야구계에는 이 시점부터 "김성근 감독이 LG로 간다더라"라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이 김 감독의 LG행을 발목잡았다. 먼저 김성근 감독과 김기태 감독의 관계이다. 만약, 김성근 감독이 바로 LG 감독직에 부임하게 되면 애제자로 통하는 김기태 감독을 내치고 감독직을 차지하는 모양새가 된다. 이 점에 대해 김성근 감독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반응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이번 시즌 다른 인물이 감독대행을 맡아주면, 올시즌을 마치고 감독 자리에 앉는 것으로 얘기를 했다. 감독직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제자와의 관계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 5월 LG와 한차례 소문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본인인 것도 김성근 감독은 알고 있었다. 당시 LG가 감독 교체를 생각했고, 그 후보가 김성근 감독이라는 얘기가 팀을 이끌던 김기태 감독의 귀에 들어가 김기태 감독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LG는 마땅한 대행감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김성근 감독이 아닌 바로 감독에 와 일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고양 원더스와의 관계 정리도 중요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허 민 구단주를 배신할 수 없었다. 김성근 감독이 "절대 프로팀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허 구단주는 김 감독이 프로로 돌아간다면 언제든지 보내줄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도 퓨처스리그 시즌을 치르는 한 팀이다. 만약, 프로에 복귀한더라도 원더스에서의 시즌을 온전히 잘 마치고 옮기는게 김성근 감독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LG는 지난 2002년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는 희대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는 팀이 어려움에 빠지자 다시 김 감독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다. 자존심도 버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LG의 행정이었다. 안타까운건, 그렇게 해서 김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놓치고 만 LG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