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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나타난 넥센 하영민, "장점 밀고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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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 나갈 단계는 아닌데…."

13일 대전구장. 한화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넥센 염경엽 감독은 경기 전 선발투수 하영민(19)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준비를 좀더 해야 하는데…"라며 "스프링캠프와 2군을 통해 계속해서 선발로 준비했다.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경험'이 필요하다던 고졸 신인 투수가 일을 냈다. 데뷔전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넥센 우완투수 하영민은 13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5회까지 72개의 공을 던지며 3안타 2볼넷을 내줬고, 탈삼진 1개를 기록했다.

역대 다섯번째 고졸 신인 투수의 데뷔전 승리였다. 지난달 30일 LG 임지섭이 잠실 두산전에서 5이닝 1실점하며 네번째 주인공이 된 뒤, 14일만에 새로운 주인공이 나왔다.

앞서 고졸 신인이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낸 건 세 차례 있었다. 1991년 롯데 김태형이 부산 OB(현 두산)전에서 승리를 따냈고, 2002년 KIA 김진우가 광주 현대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며 두번째 주인공이 됐다. 지금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이 2006년 잠실 LG전에서 승리를 따내 세번째 기록을 세웠다.

하영민은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넥센에 지명됐다. 키 1m80에 몸무게 68㎏, 얼핏 보면 야구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작고 호리호리한 체형이다.

퓨처스리그(2군)에서 착실하게 선발 수업을 받던 하영민은 지난 9일 2경기 연속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 선발 오재영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2군에서는 지난 1일 LG전에서 6⅔이닝 6피안타 3볼넷 3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고, 지난 8일 고양원더스와의 교류전에서 5이닝 9피안타 3볼넷 5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3연전 중 첫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해 일찌감치 위닝시리즈를 예약해 여유가 있을 법도 했지만, 이건 팀이나 다른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소리였다. 데뷔 첫 등판 기회를 잡은 신인 투수에겐 모든 게 떨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영민은 씩씩하게 자기 공을 뿌렸다. 주자가 나가도 위축되는 법이 없었다. 1회말 선두타자 이용규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허도환이 도루를 저지해내며 보다 가볍게 출발할 수 있었다. 정근우에게 재차 볼넷을 내줬지만, 이번엔 이강철 수석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하영민을 진정시켰다.

결국 피에와 김태균을 우익수 뜬공, 3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1회를 마쳤다. 2회는 삼자범퇴였다. 김회성을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통해 6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는 모습은 일품이었다. 하영민의 주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3회에는 위기도 있었다. 선두타자 한상훈에게 커브를 던지다 높게 들어가는 실투가 돼 우익수 오른쪽으로 향하는 2루타를 허용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김민수, 이용규, 정근우를 2루수 뜬공, 좌익수 뜬공, 3루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상위 타순으로 연결되는데도 흔들림 없이 자기 공을 던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4회도 삼자범퇴로 마친 하영민은 3-0으로 앞선 5회 첫 실점했다. 선두타자 김회성에게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2루타를 맞았는데 넥센 좌익수 로티노가 공을 더듬는 실책을 범해 3루를 내줬다.

하영민은 정현석을 3루수 앞 땅볼로 잡아냈지만, 한상훈에게 또다시 2루타를 허용해 1실점하고 말았다. 3점차에서 2점차로 좁혀진 상황. 하영민은 움츠려들지 않았다. 3회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김민수와 이용규를 1루수 뜬공, 2루수 앞 땅볼로 잡아내는 담력을 보였다.

직구 최고구속은 146㎞, 72개의 공 중 절반에 가까운 31개가 직구였다. 이외에도 자신의 주무기인 슬라이더(14개)에 커브(3개), 체인지업(24개)을 섞어 효과적으로 상대의 타이밍을 뺏었다. 특히 체인지업을 통한 완급조절 역시 신인답지 않았다.

경기 후 하영민은 "짜릿하다. 날아갈 것같이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긴장한 후배를 위해 선배들 모두 '즐기라'는 말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는 "후반기 쯤이나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감독님께서 '부담 없이 던져라'고 말해주셨다.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하영민은 "아마추어 땐 덩치가 큰 선수도 적은데 프로에선 덩치가 크고 TV에서만 봐왔던 선수들이라 긴장도 됐다. 3회말 무사 2루를 막을 때 정말 긴장됐다"고 말했다. 당시 무사 2루에서 세 타자 연속 범타를 잡아낼 때 체인지업이 통한다는 걸 깨달았다. 좌타자 상대로만 던지던 공인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 먹혔다고.

가족 앞에서 거둔 첫 승이라 더욱 기뻤다. 원래 형만 오는 줄 알았는데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이 모두 와서 경기를 관람했다. 마운드를 내려가고 나서야 가족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하영민은 "어디 앉아 계신 지도 모르고 경기를 했다. 올라와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하영민은 "내가 공을 빠르게 뿌리는 것도 아니고, 무게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명될 때부터 제구가 장점이었다. 장점을 통해 맞혀 잡는 식으로 던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전=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