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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유벤투스, '체면치레'는 보누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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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확한 표현을 위해 사전을 찾아보곤 한다. 얼마 전 검색한 단어는 '체면치레'. 연관 검색어로 체면, 간신히, 겉치레 등이 나열되더니 뜬금없이 '유로파리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럴 만도 했다. 챔피언스리그를 드나들던 올림피크리옹(이하 리옹)과 유벤투스의 맞대결. 승리해서 얻을 것은 많지 않지만, 패배해서 잃을 것은 많다. 4일 새벽(한국시각) 프랑스 리옹 스타드제를랑에서 열린 2013-14 UEFA 유로파리그 8강 1차전에서는 원정팀 유벤투스가 0-1로 승리하며 체면을 세웠다.

▶ 리옹의 신경은 피를로에게 쏠려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리옹의 4강행 성패는 '피를로를 어떻게, 얼마나 방해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그간 유벤투스의 공격은 깊숙히 내려앉은 지점에서 플레잉메이킹을 해낸 이 선수의 발에서 시작했다. '피를로주의보'가 발령된 리옹의 전방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말브랑크가 패스 수도꼭지를 잠그는 임무를 맡았다. 이를 의식한 피를로는 조금 더 부지런히 폭넓게 움직였고, 거의 모든 패스를 한두 번의 터치 이내에 처리하며 상대 압박을 흩뜨렸다.

양질의 패스를 제법 뿌려주었으나,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다. 유벤투스는 견제에 시달린 피를로 대신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보누치의 볼 운반에 기댄다. 리옹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라인 간격을 좁혔고, 마르키시오-포그바 라인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며 연결고리 역할을 기대만큼 해내지 못했다. 패스는 점차 양 측면으로 향했다. 아사모아가 상당히 높은 선까지 올라서며 측면에서의 공격 패턴을 준비했다. 혼잡한 중원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 슈팅 기회 잡지 못한 유벤투스의 원인은 어디에?

전체적인 흐름을 장악했음에도 슈팅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볼 점유는 대부분 아랫동네에서 이뤄졌다. 전방으로 패스를 투입해 공격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던 유벤투스는 한번에 때려넣는 방법을 택한다. 테베즈-오스발도의 투톱 라인이 제공권 싸움에서 유리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볼을 투입한 뒤 중원이 올라서서 압박을 가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볼을 빼앗으면 보다 높은 선에서 재차 공격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수비 진영에 밀집한 리옹을 어떻게든 공략해 보려는 방법이었다.

유벤투스의 중앙 미드필더 라인, 투톱 라인이 패스 루트 발굴에 다소 게으른 탓이기도 했다. 공격수는 상대 골문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는 것은 경계하되, 상대 수비를 끌어낼 최소한의 움직임은 가져줘야 했다. 그제야 득점력 있는 2선의 폭발 역시 기대해볼 수 있었으며 여기서 나올 시너지가 전체적인 공격을 더 원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작업이 되지 않았으니 잘게 썰어가는 패턴은 부담스러웠고, 이른바 '뻥축구'가 벌어졌다. 리옹 수비는 대부분 완만하게 넘어온 볼을 그리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 투톱 교체가 활발함 가져왔고, 보누치가 체면 살렸다.

후반 들어 리옹은 라인을 슬슬 올렸고, 유벤투스는 공간의 틈에서 볼잡기가 수월해졌다. 볼을 키핑할 때 상대 골문을 향해 돌려놨으니 연계로 이어지는 과정도 한결 쉬워졌다. 후반 11분 테베즈가 직접 교체 의사를 밝히며 부치니치가 투입됐고, 5분 뒤에는 오스발도 대신 지오빈코 나섰다. 지오빈코는 특히 측면에서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가져가며 상대 수비를 괴롭혔다. 웅크린 수비벽이 양옆으로 퍼지면서 중앙에는 균열이 일어났고, 부치니치는 대기권으로 쏘아 올리는 슈팅으로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슈팅 개수를 늘렸지만, 리옹의 역습도 있었다. 얼마 못 갈 듯했던 0-0 균형은 후반 40분 코너킥 상황에서 깨진다. 피를로가 전담한 킥은 단조로움을 탈피했다. 길게 연결해 골키퍼를 부담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짧게 연결해 조금 더 유리한 각도를 만들어 측면 크로스를 제공하려고도 했다. 이런 공격법이 결국엔 통했다. 마르키시오에게 슬쩍 밀어준 패스는 크로스로 이어졌고, 어수선했던 리옹 수비는 포그바의 슈팅을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보누치가 다시 차 넣으며 원정에서의 1차전 승리를 가져갔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