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는 올시즌 약체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신생팀 NC에게도 밀리며 8위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인 KIA. 유례 없는 혼전이 예상되는 올시즌엔 아예 4강 후보군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최하위인 한화와 함께 '2약'으로 꼽힐 정도다.
하지만 KIA에게도 희망은 있다. 혼전 양상 속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이 KIA에게 희망을 주고 있을까.
▶양현종에게 풍기는 에이스의 향기
강팀에는 에이스가 존재한다.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팀을 구할 만한 독보적인 투수가 있다. 팀이 연패애 놓였을 때, 혹은 페넌트레이스 흐름상 반드시 승리가 필요할 때. 에이스의 존재는 크다.
지난해 KIA에는 에이스가 없었다. 윤석민은 부상 이후 고전했고, 구멍난 마무리를 맡았다. 양현종이 전반기 9승을 올리며 이 역할을 하나 싶었지만, 불의의 옆구리 부상을 입은 뒤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KIA도 양현종을 포함해 주축들의 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올시즌엔 윤석민도 없다. 에이스가 필요하다. 새 외국인선수 홀튼이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가능성을 보인데다 토종 좌완 양현종의 페이스가 심상치 않다. 시범경기부터 14⅓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했다.
올시즌 양현종은 지난해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기존 직구 슬라이더 체인지업에 커브라는 새 무기를 장착했다. 그동안 거의 던지지 않았지만, 스프링캠프부터 연마한 커브가 이젠 확실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레퍼토리가 늘어난다는 건 상대와 승부하기 수월해짐을 의미한다. 타자 입장에서 양현종은 이미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였는데 더욱 까다로운 투수가 됐다. 게다가 커브는 상대의 타이밍을 뺏기에 적합한 구종이다. 양현종의 커브는 스트라이크존 낮게 떨어져 헛스윙을 유도하기에도 좋다.
지난 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공식 개장경기에선 양현종의 역투가 빛났다. 8이닝 동안 122개의 공을 던지며 팀의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미 7회까지 109개의 공을 던졌지만, 코치의 물음에 "또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미 양현종에게선 에이스의 풍모가 느껴지고 있다. 책임감이 그 증거다.
▶성공적인 선택 이대형, 대안도 많다
에이스와 함께 KIA가 달라진 부분은 1번타자다. 확실한 리드오프가 생겼다. FA로 이적한 이대형이다.
사실 이대형은 FA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얻었다. 4년 총액 24억원이란 의외의 계약이 나올 수 있던 건 수준급 리드오프들의 연쇄이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용규가 한화로 떠난 KIA는 대체자가 절실했던 팀 중 하나다.
KIA의 이대형 선택은 현재까진 성공이다. 삼성과의 개막 2연전에서 4타수 2안타씩을 기록하더니, 챔피언스 필드 개막전에선 천금 같은 결승점을 올렸다. 이날 KIA의 유일한 득점은 이대형 혼자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형의 존재는 상대를 두렵게 만든다. 첫 풀타임 주전이 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위력. 이대형이 타석에 섰을 때 내야수들은 긴장한다. 내야 땅볼에도 1루에서 살 수 있는 스피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누상에 나가기라도 하면 투수와 포수의 신경이 곤두선다. 도루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1일 NC전에서 이대형의 득점 과정을 살펴보자. 평범한 2루수 앞 땅볼에 NC 2루수 박민우는 송구 실책을 범했다. 급해서 나온 실책은 아니었다. 이대형 역시 전력질주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서 빠진 송구 실책. 이대형의 존재감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김주찬의 우전안타 때도 이대형의 주력이 빛났다. 이대형은 안타가 될 확률이 반반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피드를 줄이지 않았다. 타구가 글러브가 아닌 그라운드에 먼저 맞자마자, 이대형은 2루를 돌았다. 그동안 발로 쌓은 경험이 보여준 판단력이었다.
무사 1,3루 찬스. 이범호의 투수 앞 땅볼 때 손민한이 타구를 더듬으며 이대형이 홈을 밟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손민한도 이대형의 존재가 의식됐다. 타구를 수차례 더듬은 뒤 홈 송구. 이대형은 베이스라인에 있는 이범호의 배트를 피하면서도 홈에서 세이프됐다. 슬라이딩한 발이 김태군의 다리를 부드럽게 밀고 들어갔다. 김태군이 길목을 잘 지켰음에도 이대형의 슬라이딩 능력이 빛난 장면이었다.
KIA는 지난해 시즌 초반 FA 김주찬이 손등에 투구를 맞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 신종길이라는 대체자를 찾았지만, 시즌 전 계산이 어그러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대형까지 가세해 빠른 타자만 3명이다. 대안을 충분히 마련해둔 KIA, 1번타자는 걱정이 없다.
광주=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