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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MoM윤석영"브라질?마음비우고 내축구에만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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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진짜 많이 뛰었나봐요. 힘들어서 못일어나겠어요."

미들스브러전 다음날인 24일(한국시각) 윤석영(24·퀸즈파크레인저스)의 목소리는 바닥까지 잠겨 있었다.

QPR 유니폼을 입은 이후 무려 7개월만의 선발이었다. 뛸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지난 1년간의 경험치로 미뤄볼때 마지막 순간까지 출전을 장담할 순 없었다. 선발명단을 확인한 후 윤석영은 마음을 다잡았다. 내심 '해리 레드냅 감독이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7개월만의 선발출전, 왼쪽 사이드백 윤석영은 이를 악물었다. "베스트를 다했죠, 후회없이 100%를 다 쏟았어요"라며 웃었다. 90분 내내 왼쪽라인을 오르내리며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쉴새없이 크로스를 올렸다.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8개의 크로스를 기록했다. QPR 공격의 43%는 왼쪽 측면에서 이뤄졌다. 11골을 기록중인 미들스브러의 흑인 공격수 아도마와 끊임없이 맞붙었다. 스피드, 피지컬, 투지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았다. 1대1 대결에서 보란듯이 아도마를 돌려세웠다. 런던올림픽 8강전에서 잉글랜드 벨라미를 지워냈던 파이팅은 여전했다. 인저리타임 2골이 터졌다. 1-1로 팽팽하던 경기는 QPR의 3대1 승리로 끝났다.

미들스브러전 승리 직후 라커룸에서 동료들은 일제히 윤석영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구단 MoM(Man of the Match) 선정 뉴스와 함께였다. "축하해! 윤(Yun)! 원래 네 자리였잖아!" 지난 여름 프리시즌 연습경기에서 윤석영은 줄곧 주전으로 뛰었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레드냅의 애제자인 아수 에코토가 온 후 상황은 급변했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호 수비수' 윤석영은 출전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레드냅 감독을 독대했다. 10월 말 돈캐스터 임대가 전격 성사됐다. 임대되자마자 첫경기인 미들스브러전부터 교체투입됐다. 이후 선발로 잇달아 출전하며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 불운이 찾아들었다. 훈련중 왼쪽발목을 다쳤다. 돈캐스터 임대는 3경기 출전기록을 남겼다. 올해 초 QPR로 복귀한 윤석영에게 또다시 인고의 시간이 시작됐다.

스물네살 축구청년은 강해졌다. 낯선 이국땅에서 시련속에 성장했다. 세상이 늘 내맘같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을 믿고 견디는 법을 터득했다. "처음엔 지쳤죠, 하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의 평가나 선택에 휘둘리지 않고 제 축구에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라며 웃었다. "출전과 무관하게 운동을 계속 열심히 해왔어요. 웨이트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보강훈련도 하고, 훈련 끝나고 크로스, 슈팅 연습도 하고…." 3월 들어 아수 에코토(26경기 출전), 트라오레(19경기 출전) 등 경쟁자들의 부상, 중앙수비수 던의 퇴장으로 어느날 갑자기, 벼락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7개월만의 깜짝 선발에도 MoM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건 평소 꾸준한 훈련 덕분이었다.

윤석영은 홍명보 A대표팀 감독의 애제자다. 20세 이하 월드컵 8강,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런던올림픽 동메달까지 '홍명보호' 역사의 현장, 왼쪽측면에는 늘 윤석영이 있었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인생 최대의 시련이 찾아왔다. 후배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 선배 박주호(마인츠05)의 활약속에 3월초 그리스와의 평가전, 윤석영은 부름을 받지 못했다. 볼 좀 찬다는 전세계 축구선수들의 로망, 월드컵이 왜 절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윤석영은 담담하게 답했다. "마음을 비웠어요.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죠."

'스승' 홍 감독의 전술, '원 팀'(One team) 정신, 원칙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은 선수다. "경기를 많이 못뛰었잖아요. 감독님께서 저를 경기력 때문에 선발하지 못하신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욕심 부려선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물론 많이 아쉽긴 하겠죠. 그렇지만 브라질에 못간다고 해서 좌절하진 않으려고요. 저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거고, 계속 저의 축구를 할 겁니다."

런던생활 1년째 잘 적응하고 있다. 일주일에 5번, 영어학원에 간다. 영어강사 출신의 누나가 영국으로 건너왔다. 동생의 공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제 라커룸, 훈련장에서 60~70% 정도 대화를 알아듣는다. 윤석영의 런던 생활에 최근 이성친구 한명이 새로 생겼다. 첼시레이디스 10번 '지메시' 지소연이다. 지난 2월 지소연의 생일, 스시를 먹고 싶다는 말에 '스시 도시락'을 사들고 불쑥 찾아갔단다.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는데 하나도 안놀라더라고요. 진짜 무덤덤하던데요. 그래서 그렇게 축구를 잘하나?"라며 농담했다.

런던의 윤석영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낸다. 26일 새벽 위건전(1대0 승) 후반 45분 교체출전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회를 받을지는 레드냅의 선택에 달렸다. "만약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베스트를 다해 200% 뛰어야죠. 그렇지만 경기에 뛰든 안뛰든 잘 지내기로 결심했어요"라며 웃었다.

홍명보 감독은 25일 2015년 호주아시안컵 조추첨을 위해 출국했다. 공항 인터뷰에서 "브라질월드컵 엔트리의 90% 정도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윤석영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석영이가 경기에 출전하면 대표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리그에 출전할 수 있어서 고무적"이라는 말로 희망을 드러냈다. 대한축구협회는 30명의 예비엔트리를 5월 9~12일 사이에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한다. 5월말 23인의 최종 엔트리가 확정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