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플레이오프 6강 1차전 기록지를 보자.
극명하게 드러나는 두 이름. 전자랜드 리카르도 포웰과 KT 후안 파틸로다. 포웰은 1차전에서 32득점, 파틸로는 23득점을 올렸다.
포웰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플레이. 반면 파틸로는 의외다. 게다가 파틸로는 포웰의 수비약점을 파고들며, 전자랜드 수비 조직력에 혼란을 줬다. 이 부분은 승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파틸로의 깜짝활약으로 KT는 수월하게 기선을 제압했고, 결국 1차전을 가져갔다.
두 선수는 공통점이 있다.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불안정하다. 양 팀 사령탑은 모두 알고 있다. 당연히 그 딜레마를 극복하고 공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너무나 치열한 전자랜드-KT전 6강의 핵심 포인트다.
●KT에게는 쉽지 않은 포웰 시프트
전자랜드는 정규리그 내내 포웰의 수비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현호 한정원 김상규 등 파이팅 넘치는 수비와 희생정신이 투철한 포워드진을 함께 배치, 철저한 로테이션 수비로 포웰의 수비를 도왔다. 대신 포웰은 뛰어난 테크닉을 앞세워 공격에 더욱 힘썼다. 객관적인 전력이 약한 전자랜드가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킨 가장 기본적인 틀, '포웰 시프트'였다.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한정된 자원 속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찾았고, 실전에 적용했다. 이 부분은 당연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프로농구판에서 유재학, 전창진에 이어 젊은 감독 중 유도훈 감독이 가장 각광을 받는 이유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딜레마는 표면에 가렸을 뿐 없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포웰이 있는 동안 없어질 수 없는 문제였다.
더욱 큰 문제는 플레이오프와 같은 큰 경기에서 이런 포웰의 약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이 단적인 예였다. KT 전창진 감독이 후안 파틸로를 과감히 선발로 쓸 수 있었던 이유. 노련한 전 감독은 포웰의 수비력을 감안했을 때 파틸로가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경기가 끝난 뒤 전 감독은 "파틸로의 공격을 포웰이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이번 플레이오프 6강 시리즈는 양 팀 모두 공격에서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다. 전자랜드 수비력은 정평이 나 있다. KT 역시 수비 조직력은 수준급이다. 전자랜드 정영삼 정병국 김지완, KT 전태풍 조성민 김우람 등이 쉽게 뚫을 수 있는 수비 조직력이 아니다. 팽팽한 수비 대치국면에서 양 팀은 당연히 공격루트를 하나라도 더 늘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전력 자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방법은 딱 하나. 가장 효율적인 패턴을 가지고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것이다. 하지만 패턴을 만든다고 해도 많은 반복연습이 필요하다. 게다가 상대 패턴의 변화에 따른 수비조정도 생긴다. 비효율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포웰의 수비 약점이 생기면서 KT가 내민 '파틸로 카드'는 매우 간결하면서 파괴적이다. 파틸로의 능력을 극대화하면서 포웰의 약점을 공략하는 방법. 즉 KT 입장에서는 공격 루트의 다양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자랜드 입장에서는 포웰의 수비부담과 함께 팀 자체적으로 또 다른 포웰 시프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복합적인 악재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유도훈 감독은 1차전이 끝난 뒤 "2차전에서는 준비한 수비들이 있다. 변화를 줄 것"이라고 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전자랜드만의 지역방어, 혹은 파틸로가 나왔을 때 만들 수 있는 특수한 더블팀 & 로테이션 수비다. 그런데 이 부분도 완전치는 않다. 외곽에 조성민과 전태풍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지역방어와 로테이션 수비는 외곽에 찬스가 난다. 그런 찬스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리그 최고의 가드 듀오가 KT에 있다. 이런 측면만 고려하면 당연히 KT가 유리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파틸로 딜레마가 가져올 수 있는 반전의 미학이 도사리고 있다.
●파틸로, 폭발하거나 혹은 무너지거나
일단 파틸로를 살펴보자. 지난 시즌 KGC에서 뛰었다. 엄청난 운동능력과 득점력을 지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 팀동료를 이용할 수 있는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의지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수비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런 선수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생각. '상대가 한 골을 넣으면 나도 한 골을 넣는다'는 자세.
농구에서는 매우 위험하면서도 설익은 생각이다.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같은 NBA 슈퍼스타들을 떠올려보면 금방 결론이 난다. 그들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동급 최강의 수비력을 지녔다.
팀 입장에서 이런 선수는 골치아플 수밖에 없다. 팀동료들의 능력을 갉아먹고, 사기를 떨어뜨리고, 결국은 무모한 공격으로 자신의 플레이까지 무너질 수 있는 도미노 현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지난 시즌 KGC 지휘봉을 잡았던 이상범 감독은 이런 파틸로의 성향이 플레이오프에서 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교체를 요구했지만, 무능한 구단 고위수뇌부는 이런 현장의 요구를 묵살했다. 결국 KGC는 4강에서 탈락했다.
그는 돌고 돌아 결국 대체 외국인 선수로 KT에 들어왔다. 6강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 전 감독은 "파틸로가 많이 바뀌었다. 수비에 대한 자세도 좋아졌다"고 했다. 실제 1차전에서 그랬다. 파틸로는 무모한 공격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확하면서도 파괴력 넘치는 공격으로 KT의 초반 분위기를 이끌었다. 수비 역시 적극적이었다. 당연히 파틸로는 1차전 승리의 주역이다.
하지만 불안감이 있다. 1차전 막판 전자랜드는 파틸로의 공격동선을 체크하면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수비에서는 자세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세부적인 약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순간순간 느슨한 부분이 있었다.
문제는 파틸로의 공격이 막혔을 때의 대처다. 1차전은 파틸로 입장에서 너무나 잘 풀렸던 경기. 하지만 자신의 공격이 무너지면 무모한 공격, 느슨한 수비가 동시에 나올 수 있는 성향이 짙다. 물론 전 감독도 이런 부분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파틸로가 무너질 경우 당연히 아이라 클락으로 교체할 것이다. 1차전이 끝난 직후 "우리의 메인 용병은 여전히 클라크"라고 말한 이유.
하지만 파틸로가 벤치에 앉는다면 전자랜드의 부담감을 가중시킬 강력한 카드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번 6강 플레이오프의 승패는 포웰과 파틸로의 약점을 누가 효율적으로 공략하느냐, 어떤 팀이 약점을 최소화하느냐에 달렸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