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개막 전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59)은 '엄살'을 부렸다. 그럴 만했다. 한국 최고의 수비형 레프트로 평가받던 석진욱이 코트를 떠났고,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도 둥지를 옮겼다. 전력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신 감독은 리베로 이강주와 센터 이선규를 데려와 나름대로 빈 자리를 메웠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신 감독은 이번 시즌 판도를 1강2중4약으로 예측하면서 삼성화재를 4약에 뒀다.
이런 상황에서 신 감독이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선수들의 응집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평소 팀워크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 신 감독은 더 강력한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 강한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승의 신'의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신 감독은 "팀워크가 결집되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이전에 비해 선수들이 한데 뭉치는 것이 약해졌다.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비장의 무기가 녹슨 느낌에 신 감독은 1995년 11월 삼성화재 지휘봉을 잡은 이후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단다. 고비는 시즌 막판에 찾아왔다. 5라운드에 접어들기 직전 두 경기를 연속으로 패했다. 신 감독은 "2연패 뒤 상당히 휘청거렸다. 5라운드 한국전력과의 첫 경기에서 3대2로 겨우 이겼는데, 졌으면 와르르 무너졌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버티고 버텼다. 항상 "정규리그는 '버티기 싸움'이다"고 얘기하던 신 감독은 9일 V-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세 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품었다. 이날 삼성화재는 라이벌 현대캐피탈과의 2013~2014시즌 NH농협 V-리그 원정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대1(22-25, 25-23, 25-17, 25-20)로 역전승을 거뒀다. 삼성화재는 23승6패(승점 65)를 기록, 2위 현대캐피탈(승점 61)의 추격을 뿌리치고 남은 한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화재는 2011~2012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정규리그의 맨 꼭대기에 섰다.
결국 신 감독은 선수를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 승리의 원동력에 대해선 "1세트에선 밀린다고 생각했는데 2세트부터는 우리 선수들이 결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승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우승을 하는게 좋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신 감독의 '믿을맨'은 역시 레오였다. 홀로 49득점을 폭발시켰다. 공격점유율은 69.16%, 공격성공률은 66.22%에 달했다. 신 감독은 레오에 대한 칭찬을 해달라고 하자 수줍게 엄지만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나도 말이 없고 레오도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런 우리 사이에는 둘만의 뭔가가 있다. 믿는다. 심지가 있는 선수"라고 했다. 레오도 화답했다. 레오는 "감독님도 많은 말씀을 안하시지만 항상 '몸 조심하고 잘 챙겨먹으라'고 체력관리를 주문하신다. 나한테는 감독님의 말씀 하나가 보약이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올시즌 우승은 뜻깊다. 노력을 더 많이 했다. 치열한 선두 경쟁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동료들과 더 열심히 훈련을 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28일부터 플레이오프 승자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7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에 도전한다. 신 감독은 "전술적인 부분은 전혀 나올 것이 없다. 기본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 결집력이다. 또 큰 경기는 범실 싸움이다. 집중력에서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챔프전까지 2주란 시간이 남았지만, 신 감독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챔프전 때까지 가장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부터 사흘을 쉰다. 단, 주전선수만…"이라며 웃었다.
천안=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2013~2014시즌 NH농협 V-리그 전적(9일)
★삼성화재(23승6패) 3-1 현대캐피탈(21승8패)
러시앤캐시(10승18패) 3-2 한국전력(6승23패)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