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보영이 59분의 드라마를 10분으로 만들었다. 진정한 시간을 훔치는 배우, '타임 스틸러'다.
3일 첫방송한 SBS 새월화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하 '신의 선물')'에서 이보영은 안방 극장에 익숙치 않은 스릴러 드라마 주인공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첫 회에서 잔혹동화로 문을 연 '신의 선물'은 엄마가 죽음의 사자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기위해 머리카락과 눈알까지 뽑아내는 끔찍한 희생을 보여주며, 섬뜩한 미래를 예고했다.
이보영은 딸 샛별(김유빈)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샛별이가 원하는 놀이보다는 학업 성적에 연연하는 엄마 김수현으로 등장한다. 샛별이와 이야기할 때도 늘 수학과 국어 받아쓰기와 연관지어 이야기할 정도다. 인권 변호사 남편(김태우)를 둔 시사교양 프로그램 '공개수배 이사람'의 메인 작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샛별이가 장애를 지닌 영규(바로)와 있느라 학원을 빼먹자, 영규의 뺨을 갈기는 이중성도 지녔다.
이보영은 전작 KBS '내 딸 서영이' 때처럼 싸늘하면서도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보여줬던 인간미를 자유롭게 오가는 현란한 줄타기로 주인공 김수현을 단 1회만에 땅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현실적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보영은 드라마 말미에 '공개수배 이 사람'의 생방송 도중 용의자가 자신의 딸 샛별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절정의 물 오른 연기력을 보여준다. '완벽한' 일터와 가정, 딸에게조차 완벽함을 요구했던 엄마 김수현은 이 지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손에서 놓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 김수현이 돼버렸다. 시청자는 이보영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59분짜리 드라마를 단 10분만에 봐 버린 듯한 느낌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신의 선물'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뗐다. 앞으로의 순항 여부를 섣불리 단정하긴 이른 시점. 하지만, 왠지 '내 딸 서영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이어 이보영의 3연승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것은 기자만의 앞선 느낌일까.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