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여러분께선 '맨유의 몰락'을 보고 계십니다

by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26일 새벽(한국시각) 그리스 카라이스카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올림피아코스에 2-0으로 무릎 꿇었다. 역사상 그리스 클럽에 당한 첫 패배, 또 하나의 기록이 파괴됐다. 홈에서의 2차전이 남았지만, 더는 예전의 올드 트래퍼드가 아니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해도 이 정도 경기력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렇다고 리그에서 4위 리버풀과의 승점 11점 차를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 마치 역사책에서만 봐온 어느 왕조의 몰락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느낌이다.

도통 길을 찾지 못했다. 압박은 올림피아코스가 조금 더 높게, 적극적으로 한 편. 볼을 잡지 못한 맨유는 상대의 패스웍을 가까스로 끊어내곤 했으나, 공격의 시발점이 부정확해 다시 주춤했다.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스몰링은 스텝이 꼬였고, 비디치가 마지막 벽 역할을 하며 겨우 버텼다. 그럼에도 결국엔 전반 38분 선제골을 내준다. 후방으로 복귀하던 중 시야가 측면에 묶였고, 뒷공간에서 쇄도하던 상대 공격수를 확실히 잡지 못한 탓이었다. 데 헤아의 신체 조건과 반사 신경이 아무리 좋다 한들 굴절된 슈팅의 역동작 앞에는 장사 없었다.

패스를 받을 자는 준비가 되지 않았고, 패스를 줄 자는 무리한 플레이를 남발했다. 이 부분이라면 캐릭-클레버리 라인이 볼 없는 상황에서 보인 움직임을 꼬집고 싶다. 중앙 수비를 중심으로 후방에서 볼을 잡았을 때, 이들의 포지셔닝은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중원에서 조금 더 도전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대신 측면으로 빠지거나 후방으로 내려왔고, 이 때문에 볼을 기점으로 4~5명까지 일렬로 서는 상황이 발생한다. 볼이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음은 물론이며, 상대가 놓은 전방 압박의 덫에 계속 걸려들었다. 61%에 달한 접유율은 아무 짝에 쓸모없었다. 상대 공략법을 찾지 못해 볼을 오래 갖고 있었다는 방증일 뿐이었다.

중앙 미드필더의 실종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루니가 부지런히 내려와야 했고, 영과 발렌시아도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모양새는 미세먼지 때문에 서울행 항공편이 끊긴 지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루니가 다재다능하다고는 하나 순간 이동의 기능까지 탑재하진 않았다. 아래로 내려온 루니는 상대 압박에 둘러싸였고, 다시 골대 쪽으로 접근하질 못했다. 이 상황에서 볼이 한 번쯤 전진해 중앙선 언저리에 도달한다고 해도 앞선의 공격진 숫자가 2~3명에 불과했다. 힘들게 볼을 잡아내면 또 다시 상대 수비에 둘러싸였다. 어떤 루트를 활용하든 반페르시행 교통편은 줄줄이 결항이었다.

측면 자원이 짐을 덜어주지도 못했다. 공격진 간격이 대체로 넓었던 맨유는 패스의 흐름이 계속 끊겼는데, 이는 영과 발렌시아의 역할 수행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봐야 한다. 옆줄 가까이 움직이며 측면을 살리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히 좋았다. 하지만 이 두 선수 모두 상대 수비와의 일대일 경합에서 압승이 보장될 만큼 다양하고도 치명적인 패턴을 지니지는 못했다. 이는 곧 측면 수비가 부지런히 올라가고 중앙 공격수 역시 옆으로 빠져 상대의 시선을 흔들어줘야 했다는 얘기. 필드 플레이어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지 못한 결과는 참담했다.

후반 9분 두 번째 골까지 헌납한 맨유는 중반 이후부터 그나마 기를 편다. 올림피아코스는 원정골을 내주지 않겠다기보다는 홈에서 한 골 더 퍼붓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섰고, 그렇게 생긴 틈을 조금씩 공략해나갔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했던 원정 골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를 전력에 만만한 팀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그리스 팀과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90분 어디에도 맨유가 생각했던 '꿀 대진'은 없었다. 어쩌면 반대로 맨유를 만난 상대가 '꿀 대진'에 놓인 건 아닐까.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