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의 프랜차이즈였던 이상범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놨다.
지난 21일 안양실내체육관, KGC는 연장 접전 끝에 LG에 74대80으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KGC는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됐다. 경기가 끝난 뒤 이 감독은 구단 측에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감독의 용퇴였다. 책임을 진다는 건 사퇴를 의미했다. 사실 이 감독은 시즌 내내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다. KGC는 이날 밤 곧바로 이 감독의 사퇴를 받아들였다. 이 감독의 결정을 반려하거나 만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형식은 자진사퇴였지만, 경질과는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동안 이에 대해 언질을 받아왔던 이 감독이 플레이오프 탈락 확정으로 '물러날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구단은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등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감독이 자진사퇴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의연하게 떠났다. 사퇴가 결정된 밤 사이, 선수단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새벽에 나온 언론 보도를 접한 몇몇 선수들을 통해 선수단도 이 사건을 알게 됐다. 잠을 설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음날인 22일 이 감독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선수단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만날 지 모르는 일이다. 모두들 열심히 운동하길 바란다"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고개를 숙인 선수들 앞에서 이 감독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규리그가 6경기 남은 상황, 이 감독은 선수들의 자신의 사퇴로 인해 흔들리길 원하지 않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과 유대가 끈끈한 사령탑이다. KGC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2년부터 SBS에서 뛴 이 감독은 프로 출범 이후에도 팀을 옮기지 않았다.
2000~2001시즌 코치 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은 팀이 SBS에서 KT&G, KGC로 바뀌는 과정에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2008~2009시즌 KT&G 감독대행을 시작으로 2009~2010시즌부터 정식 감독으로 프로 사령탑 생활을 했다.
KGC의 프랜차이즈에 오랜 시간 선수들을 지도한 탓에 누구보다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사령탑이다. 게다가 리빌딩을 통해 2011~2012시즌 KGC에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전신인 SBS 시절부터 프로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던 팀을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재 KGC의 선수단을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언제나 선수 편이었다.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로 고전하는 선수는 과감히 벤치에 앉혔다. 당장 성적이 급한 상황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선수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령탑이었다.
특히 올시즌 KGC의 '빅3'인 김태술 양희종 오세근을 적극적으로 배려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즌 내내 힘들어 한 김태술을 감싸고 배려하고, 부상을 겪었거나 부상이 있는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조절해줬다. 승부처에서 이들을 빼 팀이 패배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 화살은 모두 이 감독이 맞았다.
이 감독은 지난해 여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팀을 비웠다.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코치를 맡아 유재학 감독을 보좌해 16년만의 농구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이 감독은 지난해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지 못했고, KGC는 한 시즌 농사를 좌우한다는 외국인선수 선발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외국인선수 두 명과 모두 재계약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는 처지가 달랐다.
이 감독은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은 바 있다. 두 시즌 연속 비시즌에 자리를 비우자, 구단 고위층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됐다. 외국인선수 선발 실패와 주축들의 계속 되는 부상 악재가 겹치면서 성적을 내지 못하자 갈등은 심화됐다.
KGC는 이 감독의 내년 시즌 연봉 3억5000만원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돈은 돈대로 쓰고 헛물만 킨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김태술과 양희종이 FA 자격을 얻게 된다. 다른 구단에 비해 큰 돈을 쓰지 않는 KGC가 둘을 잡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이상범 감독이 있다면, 그동안 함께 해온 정에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들을 감싸준 사령탑마저 없다. 힘들게 한 리빌딩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이 감독은 평소 "어떻게 만든 팀인데 우리 아이들을 다른 팀에 내줄 수 없다"며 FA들을 반드시 붙잡겠다는 의사를 표현해왔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