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 날이 올까 기다렸다. 그 날이 왔다.
현지시간으로 오전 드레스 리허설 후 낮잠도 자고 몸이 가벼웠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강심장' 뒤에 숨겨진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도 사람이다. 오늘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나도 긴장한다."
워밍업을 위해 링크를 밟았다. 지옥이 찾아왔다. "너무 긴장해서 점프 감각이 하나도 없었다. 완전 맨몸이었다. 오늘 쇼트는 최악이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왔다. 다리가 떨렸고,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한국 팬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김연아 파이팅." 그제서야 자신을 믿기로 했다.
"연습 때는 쇼트에서 클린 연기를 했다는 생각에 경기에서 못 보일게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오늘 클린을 못하면 억울할 것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연습때처럼 하려고노력했다. 잘 맞아 떨어졌다. 다행히 실수없이 연기를 해 만족스럽다." 미소가 흘렀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김연아였다. 17번째로 연기에 나선 세계랭킹 29위 김연아의 1위 행진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클린연기를 펼쳤다. 아쉬움은 있었다. 대형스크린에는 74.92점이 찍혔다. 박한 점수였다. 그래도 그녀를 넘을 선수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았다.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공중 연속 3회전·기본점수 10.10점)을 깔끔하게 성공킨 그녀는 GOE(Grade Of Execution·수행점수)에서 1.50점의 가점을 받았다. 트리플 플립에서도 1.10점의 가산점을 받으며 6.40점을 얻었다. 더블악셀도 완벽했다.
스핀도 시나리오대로였다. 플라잉카멜에서 레벨4를 받았으며, 레이백에서도 레벨3를 받았다. 김연아는 허리 때문에 레이백은 레벨3까지만 소화한다. 체인지풋콤비네이션에서도 레벨4를 받았다. 다만 가산점에서는 만족할만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각각 0.93점, 0.79점, 1.07점의 GOE를 얻었다. 공을 들였던 스텝시퀀스는 아쉬움이 있었다. 레벨3에 그쳤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연기였지만 레벨4를 받지 못했다. 기본점수가 3.30점으로 깎였다. 가산점은 1.14점으로 높았다. 김연아는 스텝시퀀스의 레벨 하락으로 기본점수 31.43점과 가산점 7.60점을 더해 TES에서 39.03점을 받았다.
탁월한 예술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특유의 표정과 풍부한 감정연기로 빨아들였다. 구성요소는 ▶스케이팅 기술 ▶트랜지션 ▶퍼포먼스 ▶안무(컴포지션) ▶음악해석 등의 5개 부문으로 나눠 심판이 각각의 구성요소에 대해 점수를 준다. 그리고 '팩터(Factor·0.80)'와 곱해 총점을 도출한다. 만점은 없지만, 보통 8.5~9.0점 이상이면 최상, 8.0~8.5점이면 뛰어난 연기로 평가한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9.04점(스케이팅 기술), 8.61점(트랜지션), 9.11점(퍼포먼스), 8.89점(안무), 9.21점(음악해석)을 기록했다. PCS에서 35.89점을 받았다.
마지막 조를 앞두고 "율리아, 율리아, 러시아, 러시아"를 연호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16세의 러시아 신성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무너졌다. 3번째 점프과제인 트리플 플립에서 쓰러지며 쇼트프로그램 점수는 65.23점(5위)에 불과했다. 기술점수(TES) 33.15점과 예술점수(PCS) 33.08점에 감점이 1점 있었다. 도도했던 소녀의 눈빛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고개를 떨군채 한동안 링크를 떠나지 못했다.
아사다 마오(일본)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러나 트리플 악셀의 저주에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후 손까지 짚었다. 첫 번째 점프과제에서 넘어지며 이후 점프 과제를 이어가지 못했다. 55.51점(16위), 충격이었다. 기술점수(TES) 22.63점과 예술점수(PCS) 33.88점에 감점이 1점 있었다.
대신 리프니츠카야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러시아의 복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74.64점으로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분명 홈텃세는 있었다. 소트니코바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연기를 펼쳤지만, 너무 많은 가산점을 받았다. 김연아의 가산점이 7.60점인데 비해 소트니코바는 8.66점을 받았다. 세계랭킹 1위인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가 74.12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실수없이 연기를 해 만족스럽다." 그녀는 대형스크린에 자신의 점수가 나오자 표정이 굳어지는 듯 했다. 김연아는 "점수를 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점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시즌마다 룰이 바뀐다. 난 오늘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했다"며 "아무래도 앞에 해서 불리한 면이 없지 않았을까싶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 끝이 났다. 내일만 생각하겠다"고 덧붙였다.
드디어 피날레 무대다. 김연아는 21일 오전 3시46분 맨마지막으로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다. "오늘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까 걱정이다. 하지만 실수가 나와도 나를 믿을 것이다. 내일도 준비한 만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잠시 악몽을 꿨다. 결국은 집중력으로 연결된 길조였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상대는 김연아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