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신고 꼭 열심히 할게."
지난 해 3월,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최종병기' 심석희(17·세화여고)는 국가대표 선발전 직전 입이 귀에 걸렸다. 용인대 유도학과에 다니는 오빠 심명석씨(22)로부터 새 스케이트화를 선물받았다. 색깔도 마음에 쏙 들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녹색'이었다.
심석희는 녹색 스케이트화에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빠의 땀과 희생이 배여있다는 것을…. 오빠는 훈련 비용 마련에 바쁜 부모님 몰래 동생의 스케이트를 장만했다. 휴학계를 내고 9개월여 동안 햄버거 가게 배달과 경호원 파트타임 등으로 200만원을 호가하는 스케이트를 마련했다.
특히 오빠가 준 선물의 메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오빠의 한을 풀어달라는 의미였다. 심석희는 둔촌초 1학년 때 먼저 스케이트를 시작한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계에 입문했다.
18일(한국시각) 오빠의 바람,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이 이뤄졌다. 심석희와 한국 여자 쇼트트랙 낭자들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석희는 2위로 처진 남은 두 바퀴에서 폭풍 질주로 반전을 일궈냈다. 선두 중국 선수를 제치고 결승선에 자신의 녹색 스케이트화를 가장 먼저 내밀었다. 오빠가 사준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녹색 스케이트화가 하얀 빙판 위에서 찬란한 빛을 낸 순간이었다.
아버지 심교광씨의 희생도 지금의 심석희를 있게 했다. 아버지는 '스케이트 대디'다. 심석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아버지는 일곱 살 때 강원도 강릉에서 취미로 스케이트를 시작한 심석희가 운동에 재능을 보이자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딸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정성을 쏟았다. 강릉에서 서울, 서울에서도 훈련장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다녔다. '현대판 맹부삼천지교'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무뚝뚝한 딸의 투정도 모두 받아준 아버지였다. 심교광씨는 "가족이 아니면 투정부릴 사람도 없다. 힘든거 아니깐 이해한다"며 웃었다. 이어 "내가 아니면 누구한테 힘들다 말하겠냐"며 반문했다. 심석희도 "힘들 때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곤 한다. 이후 죄송하다며 다시 문자를 보내곤 한다"고 했다.
아버지와 딸의 마지막 데이트는 지난달 말이었다. 아이스크림 데이트였다. 역시 평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의 입맛에 맞춰 데이트 장소를 골랐다.
가족의 헌신, 심석희가 여자 3000m 계주에서 폭풍질주를 할 수 있었던 힘이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