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스포츠신문 1면, 주로 이랬다. '아, 아쉬운 금메달', '충격, 노메달', 'O일 금맥 터진다'…. 웬 충격받을 일이 그리 많았는지. 금맥은 노상 어디서 그렇게 파냈는지. 올림픽 때 말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 스토리가 그 사이를 파고 든다. 며칠 전 본지 1면은 '노진규 부모님의 눈물'이었다. 마지막 무대에 나선 이규혁도 단골손님이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그런 말을 많이 했다. "메달보다는 스토리에 신경쓰자. 성적에 얽매이지 말자"고. 그래서 선수 가족들이 피곤하다. 취재진들이 가만두질 않는다. 숨은 사연, 예전 사진 등 이것저것을 싹싹 긁어낸다.
그런데도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경쟁, 라이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마침 좋은 이슈가 떠올랐다. 러시아의 신예 율리야 리프니츠카야의 등장이다. 당장 우리의 김연아와 비교가 됐다. "둘 기술 비교해봐. 마지막 점수표를 분석해 보는 게 좋겠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이 말이 나왔다. "금메달 전선에 변수가 될까도 한번 써 봐"라는 주문도 했다.
올림픽 전,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은퇴무대를 축하해주려고 했었다. 메달은 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놈의 '언론 본능'이 꿈틀댄다. 당장 '이제 비교 좀 그만해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헐~.
김연아가 드디어 소치에 입성했다. 13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소치의 아들레르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입국장이 난리였단다.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단다. 물론 스포츠조선 기자도 나갔다. 방금전, 현지시간으로 새벽 2시가 넘었는데 기사를 올리고 있었다. 참 고생이 많다.
김연아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언제 이 날이 올까 기다렸다. 일주일이 길 것 같은 느낌이 벌써부터 든다. 남은 시간 컨디션을 잘 조절해 베스트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하지만 운동은 매일 잘할 수 없다. 경기 때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일찍와서 현지적응을 빨리하는 만큼 한국에서 훈련으로 얻은 것들을 펼칠 수 있도록 하겠다. 잘 적응하겠다"고 도 했다.
리프니츠카야에 관한 질문, 당연히 나왔다. "어떤 대회도 금메달, 은메달을 누가 받을 지 예상해서 얘기할 수 없다.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그런 분위기가 달갑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하겠다. 경기는 그 날의 운이다. 운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최선을 다한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겠다"는 게 김연아의 말이었다. 홈텃세와 관련, 심판 판정에 대해서는 "찜찜하게 마무리 된 적도 있지만 항의하더라도 번복되지는 않는다.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달라질 것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을 걱정했다.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면 집중을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긴장만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 마지막까지 또 부담을 줬나 보다. 그래도 김연아의 표정은 밝았다. 여왕의 클래스는 역시 달랐다.
언젠가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 지금 기술은 난도 몇점입니다. 완벽했어요.' 한국식 해설이란다. '아, 아름답습니다. 한마리 나비가 춤을 추고 있습니다.' 미국식 해설이란다. 한국은 기술과 점수, 미국은 예술에 관심을 둔다는 말이다. '한국선수들은 은메달에 울고, 미국선수들은 동메달에도 환호한다'는 글도 있었다. 모두 금메달 지상주의를 꼬집는 지적이다.
리프니츠카야의 도전,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여왕의 은퇴식을 더 빛내 줄 축하객이 왔다고. 김연아가 떠난 뒤 빈자리를 채울 샛별과 만난다고. 메달 경쟁은 잊고 말이다.
여왕은 이제 마지막을 준비한다. 눈물이 많이 나올 것 같다.
.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