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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이규혁 마지막 소감 "올림픽은 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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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무려 두 바퀴를 돌았다. 20년간 올림픽을 지켰다. 이규혁(36·서울시청)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는 12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격했다. 1분10초049, 끝내 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11일 500m에서는 1·2차 레이스 합계 70초65를 기록, 18위를 차지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은 "홀가분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울리지 마세요." 눈물이 고였지만 애써 참아가며 말문을 이어갔다. 그는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면서 식스팩과 안녕했다. 선수로는 마지막 레이스였다. 다음 올림픽은 없다. 더 이상은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백전노장의 은퇴에 감동이 물결쳤다. 이규혁이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1991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였다. 16세 때 올림픽과 처음 만났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였다. 1998년 나가노(일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2010년 밴쿠버(캐나다)를 거쳤다.

16세의 소년은 어느덧 불혹을 눈앞에 뒀다. 서른 여섯 살이다. 4년 전 밴쿠버는 고통이었다. 올림픽 메달이 잡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물이었다. 올림픽은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 그도 그랬다, 이젠 끝이라고.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차디 찬 얼음판과 4년을 또 동고동락했다.

그는 "어쩌면 올림픽은 핑계였다. 메달도 없으면서 올림픽을 통로로 스케이트를 계속 했다. 그래서 즐거웠던 것 같다. 메달을 떠나 스케이트 선수로서는 행복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의 나이에 두 종목을 출전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는 한 종목에서 기권하면 후배에게 양보가 가능하느냐는 문의를 했다. 그러나 현실이 되지 않았단다.

그는 "4년 또 하라면 하겠다. 문제는 없다. 다만 이제는 운동을 더 해도 우승 후보가 아니다. 목표의식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소치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즐겁게 했다. 많은 인정을 받았다. 한국에서 응원온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덧붙였다. 한

이규혁은 초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마직막까지 버티는 스타일이다. 이날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버틴다고 버티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달 문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체력이 소진돼 마지막에 힘을 내지 못했다. 그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한국 팬들에게 두 팔을 흔들며 답례했다.

그는 떠나지만 역사를 영원히 이규혁을 기억할 것이다. 6차례 올림픽 출전, 하·동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다.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불멸의 발자취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