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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안현수는 안현수였다, 러시아도 한국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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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빅토르 안, 안현수(29)에게는 지울 수 없는 날이 됐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올림픽 무대를 8년 만에 밟았다. 남자 쇼트트랙 1500m의 결승선을 통과한 후 그는 두 팔을 벌려 포효했고, 러시아 국기를 휘감았다. 관중석에선 여자친구 우나리가 환희로 화답했다. 금메달보다 더 값진 동메달로 '쇼트트랙 황제'의 건재를 과시했다.

2006년 토리노대회에서 남자 1000m와 1500m, 5000m 계주를 제패하며 대한민국에 금메달 3개를 선물했던 안현수다. 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올림픽 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러시아로 국적을 바꿔 메달 한 개를 추가하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그는 소치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소치에 도착할 당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공항을 떠났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도 다른 통로를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가거나 질문을 해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올림픽 후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고 했다.

동메달이 그를 끄집어냈다. 안현수는 이날 메달리스트 자격으로 공식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취재진이 귀를 활짝 열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일본 기자가 러시아 귀화 문제를 꺼냈다. 그는 "일단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렇데 다시 올림픽에 나선 것이 기쁘다. 메달을 따게 돼 남은 종목을 더 편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쉽지 않은 결정, 그 의미는 뭘까. 한국 기자의 질문이었다. "국적을 바꾼 것 뿐이 아니다. 부상 이후에 내가 회복한다해도 다시 올림픽에 나설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야했다. 이런 큰 무대에 다시 서게 돼 기쁘다. 토리노보다 더 즐기는 마음으로 했다. 동메달 자체가 의미있다. 특히 러시아 쇼트트랙에 첫 메달을 선사하게 돼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으로 제동이 걸렸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출전도 불발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의 갈등, 소속팀의 해체 등이 겹쳐 선수 생활의 갈림길에 서자 소치올림픽에서 명예를 되찾겠다는 각오로 주변의 비난을 각오하고 러시아로 귀화했다.

러시아 국적의 안현수는 한국어로 답변을 했다. 러시아 기자가 이를 문제삼는 듯 했다. 안현수는 "항상 신경쓰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러시아어가 부족하다. 선수들과의 대화는 더 낫다"며 "처음보다 선수들이 나를 대하는 부분이 많이 달라졌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많이 노력하고 있다. 5000m 계주에서는 꼭 함께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안현수는 500m와 1000m, 5000m 계주에 출격한다. 1500m를 통해 확실히 자신감을 얻은 듯 했다. 그는 "예전에 비해 체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나도 알고, 경쟁 선수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첫 날 메달을 따게 돼 기쁘다. 앞으로는 체력적으로 덜 부담이 되는 경기가 남았다.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국 선수들과의 관계는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비춰져 후배에게 미안하고 안타깝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는 "선수로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선수 생활이 끝나는 날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올림픽을 다시 밟고 그는 메달을 다시 목에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선에 있는 듯 했다. 안현수는 안현수였다. 러시아도 한국도 아니었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