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신기자의 開口]이규혁, 당신은 박수를 받아야 합니다

by

"이번에도 그 누구야, 또 나오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후배는 "네, 여섯번째예요"라고 했다. 무심코 "정말 끈질기네. 나 참"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데 그러면 안됐다.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이규혁(36)이 여섯번째 도전에 나선다. 1994년 릴레함메르부터 20년, 이제 마지막이란다. 태극마크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소치동계올림픽이 은퇴무대다.

그를 두고 "또 나오지"라고 했다. 농담섞인 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게 아니었다. 대단한 도전에 큰 박수를 먼저 보내야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인기 드라마 제목을 써봤다. '미라클 소치, 응답하라 2014'라는 컷을 만들었다. 감동적인 사연의 주인공들을 모았다. 첫번째 후보가 이규혁이었다. 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했다.

올라온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가 벌어진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관중은 이미 퇴장했다. 혈전을 마친 대부분의 선수들도 숙소로 돌아갔다. 경기장은 감동을 뒤로한 채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취재진을 피해 홀로 경기장 한 구석에 자리를 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16년간의 도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움이 북받쳤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휴대폰을 열었다. 평소 친형처럼 의지하던 제갈성렬 전 SBS 해설위원에게 전화를 했다. "형, 난 올림픽이랑은 인연이 없나봐."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했던 4년전, 그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이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신사중학교에 다닐 때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혔다. 1991년, 열세살이었다. 열여섯살 때 첫 올림픽에 도전했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다. 이후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2010년 벤쿠버 무대를 밟았다. 꿈꿨던 메달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악연이다. 1997년 12월, 캐나다 캘거리 월드컵 10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첫역사였다. 2001년 캐나다 오버피날레국제남자대회에서는 1500m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나가노에서 500m 8위, 1000m 13위에 그쳤다. 솔트레이크 대회에서는 500m 5위, 1000m 8위였다. 1500m에서도 8위에 머물렀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0.05초 차로 동메달을 놓쳤다.

벤쿠버 대회를 앞두고는 다시 한번 기대를 가졌다. 대회 직전 열린 세계 스프린터선수권 1000m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번만은'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500m 15위, 1000m 9위, 믿기지 않았다.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태극마크가 그를 잡았다. 꿈이 아름다운 도전에 나서게 했다. 국가대표 선발을 앞두고 이규혁은 "이번 올림픽은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꼭 나가고 싶다. 올림픽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했었다. 비장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4년은 희망적이다. 올림픽은 나에게 희망이다. 실패하면서 얻은 교훈도 많고 늘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 올림픽"이라고도 했다. 어떻게 보면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이다. 짓누르는 부담감에도 태극마크를 놓지 못한다. 그에게 태극마크는 의무고, 올림픽은 희망이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메달후보가 아니다. "나이에 대해 우려하시는 부분도 많이 느낀다. 그동안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생각해보면 마지막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쉽지만은 않지만 메달을 따든 안 따든 즐겁게 올림픽을 맞이하고 끝내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이다.

4년전, 이규혁은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준비됐어. 요번엔 정말 빈틈없이 준비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까 떨리네. 하지만 엄마가 있으니까, 할머니가 계시니까, 동생 규현이도 있으니까.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야. 끝나고 통화해.' 이번에는 떨지않아도 된다. 마지막 올림픽을 즐겼으면 좋겠다. 뒤에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국민들이 있으니까. 당신은 충분히 응원과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