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라는 수식어, 식상하지만 그래도 써야겠다. 그야말로 대세 중에 대세니까. SBS '상속자들'의 최고 수혜자라는 평가 역시 타당하지만 그래도 조금 부족함이 있다. 그의 인기 덕분에 '상속자들'이 얻게 된 인기도 상당하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김우빈에게 쏟아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과거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와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을 떠올리게 한다. 반짝 화제나 단순한 신드롬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무척 감사하지만 사실 당황스럽기도 해요." 김우빈은 아직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 자신을 칭찬하는 말들에 낯설어했다. "처음엔 최영도 캐릭터가 무척 악랄했고 저도 악랄하게 연기했어요. 제가 봐도 영도는 진짜 나쁜 놈이었죠. '상속자들' 촬영 전에 학교폭력예방 공익광고를 찍었는데 극중에서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 있어서 마음에 걸리더라고요.(웃음) 그저 영도를 예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밖에는 없었어요."
그 소박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김우빈은 드라마 출연에 앞서 캐릭터의 일대기와 백문백답을 작성했다. 영화 '친구2' 촬영을 막 끝낸 터라 시간이 부족했지만 그것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처음 연기를 배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해온 일이다. 이름과 나이 같은 뻔한 질문부터 시작해 그 캐릭터가 아니면 답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가며 차츰 캐릭터에 동화돼 갔다. "저를 믿어주신 김은숙 작가님께 실망감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더 악착같이 고민하고 나름대로 캐릭터의 중심을 잡으려 했죠. 한 장면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고 욕심을 냈어요. 제가 생각한 영도와 작가님께서 대본에 그려주신 영도의 성향이 비슷해서 다행이었죠."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김우빈의 연기력이 만나 탄생한 명대사도 수두룩하다. "눈 그렇게 뜨지마. 떨려", "왜 이런 데서 자냐. 지켜주고 싶게", "차였네. 복수해야지" 같은 것들. 김우빈은 그중에서도 "뭘 또 그렇게 ○○해. ○○하고 싶게"라는 대사를 인상적으로 꼽았다. 묘한 매력 있는데다 활용도까지 높아서란다. "글로만 읽어도 재밌지만 좀 더 거부감 없이 느껴질 수 있는 어투를 고민했어요. 저도 오글거리는데 듣는 사람은 오죽하겠어요. 물론 김탄이 더 심하긴 하지만.(웃음) 감사하게도 영도에게 재밌는 대사를 많이 몰아주셔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었죠."
배우와 캐릭터의 밀착력이 좋았던 이유는 또 있다. 김우빈은 영도의 어투는 물론이고 극중 심리변화에 맞춰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짝사랑하던 차은상(박신혜)이 준 밴드는 일부러 구깃구깃하게 만들어서 영도가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해왔다는 걸 표현했다. 영도가 혼자서 컵라면이나 잔치국수를 먹는 모습에 대해서는 가족간의 소통이 없는 영도의 외로운 상황을 반영한 설정 같다는 분석을 보탰다. 영도가 거칠기만 한 반항아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거듭난 건 김우빈의 뛰어난 대본 해석력과 표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그마한 칭찬에도 김은숙 작가에게 공을 돌리며 연신 감사해했다. 작가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싶어서 '상속자들' 출연 중에는 차기작 시나리오도 안 봤다는 그다.
김우빈이 고마워하는 또 한 사람은 바로 영화배우 문원주다. 롤모델이자 멘토로 주저없이 꼽았다. 모델학과 교수를 꿈꾸던 모델 김우빈에게 배우의 꿈을 심어줬다. 일대기와 백문백답 작성하는 것도 문원주에게 배운 방법이다. "모델로 활동하다 보니 광고도 찍게 되고 연기력이 필요한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뒤늦게 소속사의 연기 수업에 참여했는데, 첫 수업에서 선생님께 반했죠. 그분의 연기 열정을 보면서 모델을 꿈꾸던 시절의 설렘을 다시 느꼈어요. 연기가 뭔지도 몰랐지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께 연기 숙제를 내달라고 졸라서 다음날 밤새 준비한 걸 보여드리곤 했어요. 선생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뀐 셈이죠."
그렇게 인생의 항로를 바꾼 김우빈은 2013년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드라마 '학교 2013'과 영화 '친구2'와 '상속자들'까지 연달아 세 작품을 마쳤다. 그리고 그를 위해 준비된 시나리오와 대본들이 또 다시 그의 앞에 쌓여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시간이 적었다는 불만은 전혀 없어요. 지나온 모든 것이 저를 위한 시간이었죠. 배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많은 걸 배운 한해였어요. 아직 신인이고 젊고 경험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되 중심은 잡으면서 열심히 연기하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