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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울산, 고개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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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가 '포항 천하'로 막을 내리자, 울산 선수들과 프런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생각하면 할수록 진한 아쉬움이 사무쳤다. K-리그 정상 등극에 마지막 1%를 채우지 못한 한(恨)때문이다. 울산의 고위 관계자는 "축구를 떠나 내 인생에서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봤다"며 눈물의 술잔을 비웠다.

결국 손에 쥔 것은 없다. 무관이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올시즌 울산이 펼친 우승 경쟁 과정을 살펴보면, 우승컵에 입맞춘 포항 못지 않게 충분히 박수받을 만했다.

이번 시즌 울산의 첫 미션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후유증 걷어내기'였다. 우승 주역이 이적과 군입대로 6명이나 빠졌다. 변화는 필수였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발빠르게 '퍼즐 맞추기' 작업을 펼쳤다. 호베르또 까이끼 한상운 김성환 마스다 등을 영입했다. 효과는 컸다. 공격 파괴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기존 '장신 공격수' 김신욱과 '브라질 특급' 하피냐에다 호베르또 까이끼 한상운은 골결정력 부재에 대한 김 감독의 고민을 덜어줬다. 이들은 38경기에서 터진 63골 중 45골(71.4%)을 만들어냈다. 눈에 띄지 않아도 묵묵히 제 몫을 해준 '언성 히어로'들도 많았다. 중원을 두텁게 한 김성환과 마스다 뿐만 아니라 프로 3년차 최보경도 백업 역할을 잘 소화했다. 시즌 중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긴 했지만, '총알탄 사나이' 박용지의 빠른 발도 돋보였다.

수비수들도 당연히 칭찬받아야 했다. 이 용-강민수-김치곤-김영삼으로 구성된 포백 수비라인은 강한 압박과 공중볼 장악,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K-리그 클래식 14개 구단 중 최소실점(37골)을 기록했다. '베테랑 수비수' 박동혁은 전성기 때 기량은 아니지만 노련함을 뽐냈다. 박수를 받아야 할 선수는 또 있다. 골키퍼 김승규다. 프로 6년차지만, 늘 김영광의 그늘에 가려있었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시즌 초반 기회가 주어졌다. 김영광이 부상했다. 김승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매 경기 신들린 선방으로 김영광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실점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놀랍게도 슈퍼 세이브로 팀을 구해냈다. 붙박이 주전으로 발돋움한 이번 시즌 14경기에서 무실점을 펼쳐 K-리그 수문장 중 1위를 기록했다.

울산이 올해 신바람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김 감독의 '밀당 리더십'과 홈 팬을 생각하는 자세다. 김 감독은 선수단과 끊임없이 밀고당긴다. 쥐락펴락하며 분위기를 장악한다. 안일한 생활과 훈련 태도를 보이면 불같이 화를 낸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의 '헤어드라이어'에 빗대 '호거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푸근함으로 다가갔다. 선수들의 '제2의 인생'까지 상담해주고 챙겨주는 축구 선배이자, 아버지의 부드러움을 보여줬다. 김 감독에게 영원한 '갑'은 홈 팬이었다.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승리다. 김 감독은 올시즌 홈 팬들을 거의 100% 만족시켰다.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14승3무2패로 승률 81.6%를 기록했다.

이 모든 긍정의 요소가 합쳐진 울산의 2013년은 아쉽지만 행복했다. 우승을 놓친 것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내년을 준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울산의 마지막 미션이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