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은 현역시절 한국 축구의 얼굴이었다.
뛰어난 골 결정력과 넘치는 투지로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호쾌한 선제골로 4강 신화의 첫 발을 뗀 장면은 한국축구사에 두고 남을 명장면으로 팬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다. 남부럽지 않은 현역시절을 보낸 뒤 입문한 지도자 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부산을 거쳐 친정팀 포항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좀처럼 성공과 맞닿지 못했다. 황선홍의 시대도 지도자 입문 뒤 그대로 사라지는 듯 했다.
고뇌와 눈물 속에 깨달은 길은 '노력'이었다. 영광의 기억은 내려놓고 도전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했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밀한 계산과 노력으로 매 경기를 진지하게 맞이했다. 노력의 결실은 새 역사였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포항이 5번째 K-리그 왕좌에 앉았다. 지난달 FA컵에 이은 또 한번의 쾌거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제패한 팀은 포항이 유일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 편안함을 얻었다. 과거보다는 현재, 미래가 중요한 게 지금의 황선홍이다. 클래식 정점에 선 울산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매 경기를 결승처럼 치르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축구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후회없이 한다는 생각 뿐이다."
올 시즌 포항의 순항을 점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스쿼드는 빈약해 보이기만 했다. 전력보강마저 없는 포항이 '명가'의 타이틀을 지키기도 힘들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황 감독은 그저 자신이 정한 길을 걸을 뿐이었다. 매 경기 상대 분석에 열을 올렸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수첩도 경기 때마다 빠지지 않았다. 히든카드는 '자존심'이었다. 선수들에게 명가 포항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신뢰와 자신감을 증명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연결되는 패스와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공격은 노력의 산물이었다.
얼핏보면 관리형 지도자의 전형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상은 다르다. 언제나 선수들의 뒤에 서서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자들에게 맡겨두고 상황별로 포인트를 잡는 방법을 선호한다. 경기장 바깥에서 흐름을 바꾸는 노련함도 갖췄다. 상대의 흐름에 밀리거나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는 벤치를 박차고 나가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지난 2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 당시 황 감독은 2013년을 도전의 해로 명명했다. 지난해 전반기 추락의 고비를 넘기고 후반기 패스축구로 바람몰이를 했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축구에 다가서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준비한 올 시즌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다들 꿈에 불과하다고 했던 더블(리그-FA컵 우승)로 마무리를 하면서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황선홍은 이제 K-리그의 얼굴이 됐다. 울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