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뭐가 더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끄집어낼 게 많은 것 같아요.(웃음)"
뮤지컬 배우 박지연(25)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얀 백지에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보통 것들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라는 업을 갖고 그 바닥에 뛰어들어 평생 해보기 힘든 배역들이 줄지어 그녀를 찾아왔다.
스스로 '운이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렇다. 2010년 '맘마 미아!'의 소피 역으로 데뷔한 뒤 2012년 창작뮤지컬 '미남이시네요'를 거쳐 지난해 말부터 올 9월까지 대작 '레미제라블'의 에포닌으로 살았다. 오는 24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고스트'에서는 여주인공 몰리 역을 맡아 주연급으로 레벨이 껑충 뛰었다. 보태고 뺄 것 없이 '뮤지컬계의 최고 샛별'이다.
하얀 피부에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밝고 명랑함, 당차고 씩씩함부터 청순가련형까지 소화할 수 있는 마스크다. 큰 장점이다. 거기다 뮤지컬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맑고 낭랑한 목소리까지 지녔으니 더할 나위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불과 4,5년 전엔 상상도 못했어요. 사실 스무살 전에 뮤지컬을 본 적도 없거든요. 여전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에요."
박지연은 팝을 즐겨듣던 소녀였다. 음악에 미치다보니 고교 시절 록밴드를 결성해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뮤지컬을 영상으로 처음 접하게 됐다. 음악뿐 아니라 연기까지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졌다. 서울예대 연기과에 들어갔지만 배우의 꿈이 명확하게 설정된 것은 아니었다. 음악이 그녀의 가슴속에 여전히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선배의 권유로 우연찮게 '맘마 미아!' 오디션에 나갔다. 그게 지금의 배우 박지연을 만들었으니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처음 무대에 섰는 데 긴장되고 떨리기 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하나 둘 작품을 하면서 아, 배우가 내 길인가 생각해게 됐죠.(웃음)"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은 나의 운명'이었다고 비장하게 말하는 다른 많은 배우들과 달리 박지연은 쿨하고 솔직하다. "속으론 끙끙 앓긴 하지만 좀 배짱이 있는 편이에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죠."
뮤지컬 '고스트'의 몰리는 그녀가 전에 해왔던 소피나 에포닌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다.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슬픔의 여인이지만 연인의 빈 자리를 견뎌내는 강인함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아무리 실력파 샛별이라도 부담이 될 터.
"억지로 몰리가 되려고 하지 않고 내가 그냥 몰리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몰리가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나는 몰리다'라고 조금씩 몰입해 가는거죠."
'고스트'에서 전설이 된, 물래로 도자기를 빚는 장면을 위해 전문가를 찾아가 배우기도 했다. 비오는 날, 혼자 물래를 돌려보기도 했다. 그 느낌을 체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해보니 굉장히 재미있다고 한다. 취미 삼아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며 활짝 미소를 짓는다.
"슬픔에 빠져있지만 강인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역할이에요. 하지만 힘든 만큼 더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역할이기도 하지요."
어느새 쑥 자란 배우 박지연. 그녀가 '고스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아마도 남들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그녀의 몸 안에 숨어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끄집어내지 않을까. 여전히 성장 중인 배우이니 말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