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A대표팀 감독은 명단을 확정하기 전 박주영(28·아스널)에게 전화를 했다.
최종적으로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주영에게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였다. 100%일때 승선, 국내 팬들과 재회하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홍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마지막 A매치의 진용이 공개됐다. 홍 감독은 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스위스(15일·서울), 러시아(19일·UAE 두바이)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할 명단을 발표했다.
박주영의 이름은 없었다. 배려였다. 그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각)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첼시와의 리그컵 16강전(0대2패)에 후반 36분 교체 출전했다. 박주영이 아스널 소속으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3월 AC밀란(이탈리아)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이후 1년 7개월여 만이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경기 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박주영이 최근 훈련을 잘 소화해 경기에 출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홍명보호 승선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다시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신뢰에 대한 변함은 없다. 홍 감독은 박주영에 대해 단 한 차례도 부정적인 의견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애제자를 염두에 둔 듯 "언론에서 지나치게 내가 원칙 고수론자처럼 비춰져서 부담스럽다. 팀에 도움이 되는데 원칙 때문에 팀에 피해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박주영은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경기 출전=발탁'이라는 원칙을 깬 첫 발언이었다. 15일 말리와의 평가전(3대1 승) 직후에도 "박주영은 우리 팀 일원 중 하나"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홍 감독은 이날 "박주영은 어떤 선수보다 대표팀 경험이 많다. 대표팀에 들어오면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는 선수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까지 본인도 그렇고, 대표팀에 들어와 모든 것을 발휘할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제외했다"고 했다. 발탁 시점을 묻는 질문에도 "박주영에게 1월 이적시장이 있다, 경기에 출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점이 선수에게 가장 부족한 면"이라며 "개인적인 역량은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은 박주영이 대표팀에 들어와 잘못할 경우 부담이 생길 수 있다. 1월 이적시장까지 지켜보는게 맞다"고 했다. 박주영은 월드컵의 해인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반면 또 다른 '뜨거운 감자' 김신욱(25·울산)은 재승선했다. 7월 동아시안컵 이후 4개월 만에 홍명보호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홍 감독은 그동안 공격 조직력 완성을 위해 김신욱을 제외했다. 1m96인 그가 최전방에 포진하면 '뻥축구'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김신욱이 최근 편견을 깼다. 축구에 새로운 눈을 떴다. 유연성을 갖춘 헤딩으로 공중볼 장악은 더 강력해졌다. 밸런스가 잡히면서 볼키핑력도 향상됐다. 플레이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3일 인천전(1대0 승)에서 골맛을 보지 못했지만 지난달 20일 FC서울전부터 3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온도 차는 있었다. 이번 발탁에는 이견이 없으나, 물음표는 달았다. 위협적인 공격 옵션이지만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홍 감독의 기본 인식이다. 그는 김신욱의 호출에 '시간'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홍 감독은 "어느 선수보다 팀에 중요한 무기로 쓸 수 있다. 이번에 A매치를 치르면 해외파를 소집할 수 있는 시간은 내년 3월 5일밖에 없다. 이번에 부르지 않으면 해외에 있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다"며 "(동아시안컵 이후)2~3개월 만에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한 지는 모른다. 물론 팀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팀과 대표팀은 차이가 있지만 본인 의지가 강해 보였다. 기존 선수들과 호흡 등 전체적인 부분을 판단해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위협적인 포지션에서 김신욱을 활용하는게 중요하다. 능력있는 선수들과 며칠동안 호흡을 맞춰야 한다. 선발 보장은 없지만 월드컵을 대비한 하나의 옵션으로 선수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면 팀에도, 선수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신욱은 있고, 박주영은 없다. 하지만 묘한 분위기는 감지됐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