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에 만난 두산 포수 최재훈은 최형우와 채태인의 이름을 꺼냈다. "쉬면서 덕아웃에서 보니까 삼성 타자들 타격감이 올라왔더라구요. 특히 홈런 친 형우형, 태인이형은 조심해야죠."
최재훈은 3,4번타자인 채태인과 최형우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 둘에게 맞아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최재훈은 "안타는 맞아준다는 생각으로 승부하겠다"고 했다.
5회까진 괜찮았다. 1~5번타자에게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채태인과 최형우를 포함해 그 앞에 주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니퍼트-최재훈 배터리의 호흡은 좋았다. 계획했던대로 가는 듯 했다.
하지만 걱정은 현실이 됐다. 6회 선두타자 박한이가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최재훈이 우려했던 부분, 채태인 앞에 주자가 나간 것이다.
니퍼트-최재훈 배터리의 볼배합은 간파되고 있었다. 경기 전 최재훈은 삼성 타자들의 배트 타이밍을 보고 볼배합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직구를 노리고 들어오면, 니퍼트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반대로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췄을 땐, 니퍼트의 강력한 직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됐다.
초반에 먹혀들어가던 이 패턴은 6회 박한이와 채태인 타석 때 깨졌다. 특히 채태인은 초구에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춰서 배트를 돌렸다. 바깥쪽 130㎞짜리 체인지업. '타격 천재'란 별명에 걸맞은 배팅이었다. 게스히팅이 완벽히 적중했다.
결국 두산 배터리가 가장 경계했던 곳에서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만큼 채태인의 감이 좋고, 집중력 또한 높았다. 맞는 순간 높게 뜬 타구는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비거리 115m.
채태인은 삼성이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한 2011년에 53경기, 지난해 54경기 출전에 그쳤다. 부상과 부진 등으로 우승에 크게 보탬이 되지 못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 때 5경기서 타율 1할3푼3리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류중일 감독이 시즌 전 키플레이어로 꼽을 정도로 절치부심했고, 94경기서 타율 3할8푼1리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규정타석 미달이었지만, 장외타격왕이었다. 그렇게 칼을 갈던 채태인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다. 그의 타격 재능 덕에 한국시리즈는 최종 7차전으로 가게 됐다.
경기 후 채태인은 "지난 2년간 한국시리즈를 제대로 못했다. 작년엔 엔트리에 없었고, 재작년엔 엔트리에 있었지만 못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야구가 잘 됐다. 올해 좋은 감 이어갔으니 한국시리즈에서도 잘 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시리즈 초반 잘 안 돼서 의기소침했는데, 이겨서 다행이다. 정말 내일 하루만 더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