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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아쉽고 또 아쉬운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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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어느 대학 팀과 고등학교 팀의 연습경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 팀엔 기량은 동 레벨에서 으뜸이나, 본인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었다. 이날도 주심이 볼 경합 과정에서 있었던 충돌을 봐주지 않자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볼이 아닌 상대 선수를 겨냥하는 나쁜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고, 점잖은 신사였던 감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선수를 곧장 빼버렸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껏 만나본 지도자 중 축구 앞에서 소위 '건방을 떠는 선수'를 그대로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치 밖에서도 '사람이 먼저 될 것'을 강조했다. 오죽했으면 강원에 몸담았던 이을용의 좌우명이 '축구인이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라.'였을까.

14일 오전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김 씨의 인터뷰를 인용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일방의 주장만을 담아낸 기사였던 만큼 여론은 '또 사고야?', '지켜보자.'라고 극명히 나뉘었고, 이윽고 이천수가 "아내를 보호하려 했다."고 밝히자 동정의 흐름을 탔다. 하지만 이로부터 만 3일도 지나지 않아 '본인이 지키려던' 아내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밤 인천 남동경찰서는 이천수를 폭행 및 재물 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 씨는 얼굴을 두 대 맞았다고 주장하며 이천수의 처벌을 원했고, 경찰 조사 결과 이천수의 혐의가 인정됐다. 믿음을 보낸 수많은 이들의 발등이 욱신거린 3일이었다. 당사자들의 난처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문득 지난 2월이 떠올랐다. 이천수는 김봉길 감독과 함께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2013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 인천의 대표로 참석했다. "긴장이 많이 된다. 지금도 손에 땀이 많이 난다. 어제 입단식을 가져서 이틀 연속 수트를 입고 있어 적응이 안 된다."라고 운을 뗀 이 선수에게 많은 질문이 날아든 건 당연했다. 특히 김형범과의 프리킥 대결 이야기를 꺼낸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천수는 "(인천이 단독 1위고 주전으로 맹활약한다는)가정은 꼭 해주셔야 해요. 그걸 빼면 또 안 좋으니까요."라며 조심, 또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침착함과 진중함이 배어 있던 인터뷰 속에서도 "이길 자신 있다."는 말엔 살아 꿈틀대는 패기가 있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3월 3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4라운드 경기. 이천수는 무려 1,300여 일 만에 K리그의 피치를 밟았다. 이 선수의 볼 터치 하나, 움직임 하나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눈길은 '사기 캐릭터'의 재림이 이뤄지느냐로 향했다. 이날 승점 3점은 역대 인천 원정에서 1무 9패로 처참히 무너졌던 대전의 몫이었고, 김인완 감독은 대전 부임 후 첫 승을 거뒀으나, 관심을 독차지한 건 단연 이천수였다. 이를 시작으로 5월 말 부산 원정에서는 복귀 후 첫 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교체될 때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고, 구단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다.

최강희 감독이 그랬다. "난 이천수나 고종수와 같이 말썽 리는 선수들을 좋아한다. 스타 중에 평범한 선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천수는 외모 대신 출중한 실력을 뽐냈고, (때로는 과하기도 했으나) 본인의 감정을 솔직히 어필할 줄 아는 보기 드문 운동선수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처럼 판에 박힌 인터뷰의 틀을 깨버린 이천수는 미디어가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일부 악질 보도로 과장되고 왜곡돼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었으나, 그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스타였다. 더욱이 운동장에 들어가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뛰었으니 팬들을 눈길을 마구 끌어당긴 건 당연지사였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했던 선수다.

이천수의 행보는 또 다른 이들에게 희망일 수도 있었다. 비록 철없던 시절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나, 이를 깨치고 반성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슬쩍 내보인 희망을 스스로 꺾어버리며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냉랭한 반응과 마주하게 됐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거짓말의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어떤 말로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을까. '더 멋진 플레이로 보답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뻔하지 않은가. 참, 이천수는 여러모로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