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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전 마음고생 정성룡, 여전히 넘버원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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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룡(28·수원)은 과묵한 남자다.

경기장 안팎에서 웃는 모습이 서투르다.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상대의 슛을 막아내야 하는 골키퍼의 숙명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선수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 누구보다 지기 싫어한다. 정성룡도 승부에 살고 승부에 죽는 승부사 기질을 타고 났다.

12일 브라질전을 마친 뒤 3일 간은 정성룡에게 지옥이었다. 7월 28일 일본과의 2013년 동아시안컵 최종전(1대2패) 이후 2달여 만에 안방마님 자리에 복귀했다. 결과는 0대2 패배. 실점의 빌미는 네이마르(바르셀로나)와 오스카(첼시)의 현란한 발재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수비진이 제공했다. 그러나 화살은 최후의 보루 정성룡에게 쏠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질없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실점 상황을 복기하면서 자신을 채찍질 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3일 뒤 펼쳐진 말리전. 다시 골문 앞에 선 정성룡은 사력을 다했다. 말리의 공세를 안정적으로 막아내면서 3대1 역전승에 기여했다. 전반 28분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또 수비 집중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실점의 멍에를 썼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누구도 정성룡을 비난하지 못했다. 안정적인 방어와 수비 리드로 동점,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료들도 화답했다. 구자철(볼프스부르크) 손흥민(레버쿠젠) 김보경(카디프시티)의 연속골이 터졌다. 벙어리 냉가슴이었던 정성룡은 비로소 활짝 웃었다.

벅찬 승리에도 과묵함은 여전했다. 채찍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팬들의 지적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브라질, 말리전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대신 깜짝 일화를 공개했다. 김봉수 A대표팀 골키퍼 코치가 정성룡의 응원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성룡은 "말리전을 앞두고 김 코치가 따뜻한 차를 한 잔 건네줬다. 마음이 녹는 느낌이었다"며 "A매치 2연전에서 뛰지 못한 김승규(23·울산)와 이범영(24·부산)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영원한 주전은 없다. 골키퍼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7월 홍명보 감독이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안방마님 자리도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최근 구도는 안갯속이다. 8~9월 페루, 아이티전에서 연속 선발로 상승세를 탔던 김승규는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흐름이 처졌다. 이범영은 소속팀 부산의 주전으로 자리매김 했으나, 팀 부진과 맞물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말리전을 통해 관록 넘치는 기량을 선보인 정성룡 쪽으로 좀 더 눈길이 쏠린다. 다만 구도가 언제 굳어질지는 미지수다. 홍 감독은 전 포지션의 경쟁을 화두로 삼고 있다. 본선 직전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해답을 찾을 전망이다.

정성룡에게 경쟁은 익숙하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A대표팀의 막내 골키퍼로 시작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전을 거쳐 남아공월드컵 본선 주전 자리까지 따냈다. 성실함이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브라질로 가는 길을 열어가는 정성룡의 최대 무기는 이번에도 '성실함'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