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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PO] 박병호의 고의4구, '두려움' 보여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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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4구. 말 그대로 '고의적'으로 타자를 1루로 보내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지만, 대전제는 '비어있는 1루를 채워야 할 때'다. 고의4구가 나왔을 때 '1루를 채웠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주자가 2루나 3루에 한 명 있거나 혹은 2,3루 상황. 이럴 땐 1루를 채울 경우, 다음 타자와 상대하기 보다 수월해진다. 땅볼이 나왔을 때 내야 곳곳에서 포스아웃을 시키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만약 1루를 채우지 않는다면 태그를 해야만 이들 주자를 잡을 수 있다. 상대 입장에선 주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한 무사나 1사 상황에선 병살타로 아웃카운트 2개를 한꺼번에 채울 수 있다. 고의4구는 야구의 기본적인 작전이다. 보다 수월하게 아웃카운트를 늘리고 득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가장 쉬운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의4구가 나오는 또다른 상황이 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와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을 때'다. 다음 타석에 준비하고 있는 타자가 보다 약한 타자일 때. 특히 경기 막판에 가서 잦은 교체로 인해 대체불가능한 선수가 대기타석에 있을 땐 그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한정된 숫자 안에서 경기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만루 같은 상황에서 고의4구가 나올 수도 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정말 '두려울 때'다. 실제로 7일 열렸던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두산 김진욱 감독이 '경계대상 1호'로 넥센 4번타자 박병호를 꼽은 뒤, 취재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9회말 2사 만루, 타석엔 박병호. 스코어는 2점차. 김 감독은 "거르겠다"고 답했다. 1점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한 방'이 있는 박병호와 승부를 피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지난 1998년 5월 28일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는 애리조나전 9회말 2사 만루서 고의4구를 골라 나갔다. 애리조나의 벅 쇼월터 감독은 8-6의 리드 상황에서 마무리 그렉 올슨에게 고의4구를 지시했다. 1점차로 추격당했지만, 다음 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면서 1점차 승리를 거뒀다.

위기 상황에서 홈런 타자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게 바로 홈런타자의 존재감이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지난해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결정적인 장면에서 고의4구가 나왔다. 이땐 투수와 벤치가 졌다. 4-4이던 연장 10회초 2사 2,3루에서 SK 벤치는 이날 3안타를 몰아친 김주찬을 고의4구로 걸렀다. 정 훈에게 승부를 걸었지만, 정 훈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냈다. 극적인 역전, 그대로 결승점이 되면서 롯데는 2차전을 가져갈 수 있었다.

질문을 받은 상황과는 달랐지만, 실제로 두산은 3회말 박병호를 고의4구로 내보냈다. 박병호는 1회말 첫 타석에서 솔로홈런을 친 상황. 포스트시즌 데뷔 타석에서 역대 10번째, 준플레이오프 사상 역대 4번째로 홈런을 날렸다. 두산 선발 니퍼트의 높게 들어간 실투를 놓치지 않고 넘겨버렸다. 이번 시리즈가 '박병호 시리즈'임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3회말 넥센은 허도환의 우전안타, 서건창의 1루수 앞 내야안타, 서동욱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찬스를 만들었다. 이택근이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나 2사 2,3루. 두산 배터리는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 대신 5번타자 강정호와의 승부를 택했다.

데이터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니퍼트는 올시즌 강정호에게 5타수 4안타로 좋지 않았다. 타율로 치면 8할이나 됐다. 하지만 니퍼트는 대신 선택한 강정호를 4구만에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아냈다.

목동=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