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극은 세태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트렌드를 따라가지못하는 드라마는 저조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다. 반면 트렌드를 잘 읽은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최근 가장 사랑을 받는 가족극 중 하나가 KBS2 주말극 '왕가네 식구들'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궁금증이 하나 든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힘없는 남자들'이다. 왕가네 가장 왕봉(장용)은 얼핏 권위 있는 가장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큰 딸 왕수박(오현경)에게 윽박을 지르지만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학생인 아들이 자퇴를 결정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내 이앙금(김해숙)은 왕봉의 말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왕봉의 동생 왕돈(최대철)은 그저 할일없는 백수에 불과하다. 왕호박(이태란)을 빼면 그를 신경쓰는 사람조차 없다. 왕수박의 남편 고민중(조성하)은 잘나가던 사업가였지만 실패하자 아내와 장모에게 동시에 무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고민중의 아버지(노주현)는 딸의 집과 아들의 집을 옮겨다니며 무시당하기 일수다. 왕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백수로 아내가 벌어오는 월급으로 살다 간신히 호텔에 취직했다. 최상남의 아버지 최대세(이병준)는 아들 덕분에 아들 회사 회장으로 있으며 마음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극중 그나마 자기 몫을 톡톡히 하는 남자는 최상남(한주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가네 식구들' 뿐이 아니다. 많은 가족극에서 무능한 남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서 오로라(전소민)의 세 오빠 오왕성 오금성 오수성은 무는한 남자의 표본들처럼 행동하다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최근 종영한 SBS '원더풀마마'에서 윤복희는 남편 없이 홀로 세남매를 키웠다. 그중 고영수(김지석)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유학생 출신에 주위 사람들에게 늘 사기를 당하는 못난 남자였다.
SBS주말극 '결혼의 여신'에서도 못난 남자들은 대거 등장한다. 강태진(김정태)은 바람둥이에다 사업 능력도 없고 정치에 발을 담그려는 허황된 생각만 한다. 노장수(권해효)는 넉살좋고 사람 좋지만 가정에서는 번번히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인물이다. 노승수(장현성)는 잘나가는 영어방송 앵커였지만 바람을 피우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고난을 겪었다.
이처럼 힘없는 남자들이 최근 드라마에서 대거 등장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가족극에 허세남이나 백수남 등 못난 남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기류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똑부러지는 여성과 비교해 무능한 남성들의 등장이 여성 시청자들을 TV앞에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여성 권익이 점점 신장되면서 드라마에 나타나는 여성상들도 대부분 완벽녀들이다. 반면 남성들의 능력은 대체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SBS 수목극 '수상한 가정부'에서도 박복녀와 윤송화는 완벽한 여성들이지만 은상철은 자신의 일에게 벌어지는 일에 쩔쩔 매는 캐릭터다. KBS2 '직장의 신'도 그랬다. 이미 미니시리즈에서도 이같은 트렌드가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같은 트렌드는 남성보다 여성 시청층이 드라마 충성도가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 시청자들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여성들의 생각을 읽어낸 캐릭터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안방극장에도 '힘없는 남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