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개였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대는 이란 축구의 얼굴이었다. 더 이상의 치욕은 용납될 수 없었다.
상암벌에 환희가 물결쳤다. FC서울이 꿈에 그리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행에 성큼 다가섰다.
서울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이란 에스테그랄과의 2013년 ACL 4강 1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멀티 득점-무실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결승행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서울은 2차전에서 비기거나 한 골차 이하로 패해도 결승에 오른다. 골을 넣을 경우 두 골차로 패해도 결승행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ACL은 유럽챔피언스리그와 마찬가지로 원정 다득점 원칙을 적용한다. 2차전 무대는 테헤란이다. 다음달 3일 0시30분(한국시각) '원정팀의 무덤'인 아자디스타디움에서 벌어진다.
찢겨진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K-리그의 자존심 서울이 한국 축구의 체면을 살렸다. 에스테그랄은 곧 이란이다. 뜨거운 설전의 주인공 자바드 네쿠남을 비롯해 몬타제리, 테이무리안 등 국가대표 7명이 포진해 있다. 한국 축구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과정에서 '이란 쇼크'에 울었다. 지난해 10월 16일 원정에서 0대1로 패한 데 이어 6월 18일 홈에서 벌어진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0대1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란전 패전에도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다. 축제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이란이 재를 뿌렸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 한국 벤치 앞으로 달려가 주먹감자를 날렸다. 몇몇 선수는 관중들을 향해 혀를 내밀며 조롱했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뿔난 관중들은 축제를 함께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케이로스 감독 등이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벌금 징계를 받았지만 한국 축구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각오는 더 특별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평소보다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이란은 시원스럽지 못한 아쉬운 결과를 준 팀이다. 사우디 알아흘리와의 8강전에선 K-리그 위상을 얘기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접근할 것이다. 최근 이란과의 A매치 전적에서 썩좋지 않기 때문에 국가대항전 성격도 짙다. 가슴에 태극마크는 달지 않았지만 국가대항전이라는 비중을 높게 가져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고개가 더 남았지만 1차전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균형은 전반 39분 깨졌다. 고요한의 크로스가 몰리나의 머리로 배달됐다. 몰리나의 헤딩슛이 골키퍼 맞고 나오자 쇄도하던 데얀이 헤딩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두 번째 골은 후반 1분에 터졌다. 윤일록의 크로스를 고요한이 잡아 수비수를 한 명 따돌린 후 침착하게 슈팅으로 연결했다. 고요한의 발을 떠난 볼은 그대로 골네트에 꽂혔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더 달아날 수도 있었다. 몰리나는 전반 39분과 후반 34분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골문을 여는데 실패했다.
경기 후 양팀 벤치의 색깔도 달랐다. 경계와 희망이 교차했다. 최 감독은 "상대는 32팀 중 4강까지 올라올 정도로 뛰어난 팀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평소 리그 때보다 더 승리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고, 집중력을 유지했다. 물론 아직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고지대 적응과 홈 텃세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오늘 승리는 축하할 일이지만, 2차전이 남아 있다. 성남이 사우디 원정에서 3대1로 이기고 0대5로 패한 바 있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 준비를 잘 해서 남은 90분 동안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미르 갈레노이 에스테그랄 감독은 "결과가 실망스럽진 않다. 오늘 좋은 경기를 한 만큼 홈에서 승리를 노리겠다"며 "경기 운영이 괜찮았고, 선수들의 몸놀림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실수로 두 골을 내준 게 아쉬웠다. 2차전에선 오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테헤란에선 두 골을 충분히 넣을 수 있다"고 희망을 얘기했다.
K-리그는 최근 4년 연속 ACL 결승에 진출했다. 포항(2009년), 성남(2010년), 울산(2012년)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전북(2011년)은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서울은 K-리그 5회 연속 ACL 결승 진출에 도전장을 냈다. 정상 재입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