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지난 24일 광주구장. KIA와 롯데의 경기가 중반으로 접어든 이후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이날 KIA는 2대8로 역전패하면서 6연패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불어 이 패배로 인해 신생팀 NC에마저 덜미가 잡혔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된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광주구장을 적시는 9월의 가을비는 스산했다.
하지만 그런 침울함 속에서 한줄기 청명한 빛이 반짝였다. 3년차 우완투수 한승혁(20)이 보여준 시원한 호투가 잠시나마 침울함을 가시게 했던 것이다.
4회까지 단 2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KIA 좌완선발 박경태가 5회들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6점을 내줬다. 1-0으로 앞서던 상황이 순식간에 1-6으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 그렇게 5회가 종료되고 클리닝타임을 거쳐 시작된 6회. KIA 마운드에는 새로운 투수가 나와 있었다. 어차피 박경태를 계속 쓰기는 무리다. 교체가 당연한 수순.
그런데 마운드에 선 투수는 지난 19일에 다시 1군에 올라온 한승혁이었다. 6회에 5점 차는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는 곧 '추격조'로 등장한 한승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승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또 길게 상대 타선을 틀어막느냐에 따라 경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한승혁은 매우 침착했다. 자신의 주무기인 최고 150㎞의 강속구를 앞세워 롯데 타자들과 배짱 좋게 정면 대결을 펼쳤다. 타자와의 승부를 피한다거나 볼을 남발하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정면 승부는 롯데 타자들의 헛스윙을 연이어 이끌어냈다.
결국 한승혁은 3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 1개씩 내줬지만, 무실점으로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해냈다. 특히 삼진을 무려 6개나 잡아냈다. 이닝당 2개 꼴이다. 투구수 역시 53개로 이닝당 17~18개 선을 유지했다. 꽤 효율적인 모습이다.
이날의 위력투는 2011년 입단 이후 한승혁이 1군 경기에서 보여준 최고의 모습이다. 2011년 신인드래프트 1지명으로 KIA에 계약금 1억8000만원을 받고 입단한 한승혁은 불행히도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1년을 꼬박 재활에 매달렸다.
2012년이 돼서야 1군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17경기에 나와 1패1홀드 평균자책점 7.43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올해도 시즌 초반 5경기에 나와 승패없이 7이닝 8실점으로 평균자책점 10.29를 기록하며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2군 경기에서는 완봉승도 거두며 부활의 기미를 보였는데, 1군 적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4강진출에 실패한 KIA가 시즌 막판 유망주들을 자주 기용하면서 한승혁 역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확실히 지난 19일에 1군에 다시 올라온 이후 한승혁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3경기에 나와 6이닝 동안 안타 1개만 맞으면서 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다.
한승혁이 이런 모습을 계속 이어간다면 내년 시즌 1군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2군 퓨처스리그에서 선발로 계속 나선만큼 선발 요원으로 활용될 수도 있고, 필승조나 마무리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팀이 절망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와중에도 한승혁의 최근 연이은 호투는 희망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과연 한승혁이 자신감있는 호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