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혼란스럽다."
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2연전을 마친 구자철(24·볼프스부르크)의 소감이었다. 구자철은 수년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해왔다. 구자철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며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 아우크스부르크 잔류 기적 등을 일궈냈다. 그러나 올시즌의 키워드는 변화였다.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생활을 마치고 볼프스부르크로 돌아온 구자철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디에구와 수비형 미드필더 루이스 구스타보의 가교 역할이었다. 구자철은 특유의 센스로 어느정도 적응에 성공했다. 디터 헤킹 볼프스부르크 감독의 신임 속에 독일 분데스리가 개막 후 6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A대표팀에서는 혼란이 가중됐다. 구자철은 아이티, 크로아티아전을 통해 3개의 포지션을 소화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에 이어 심지어 원톱으로도 뛰었다. 홍명보 감독은 2009년 이집트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런던올림픽 등을 함께하며 자신의 전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구자철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를 실험했다. 구자철은 "사실 굉장히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2~3년간 해온 공격형 미드필더가 편하다"고 한 뒤, "볼프스부르크에서도 시즌 전 미팅 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서라는 지시를 받았다. 초반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나름 공부를 해서 적응했다. A대표팀에서도 포지션에 자리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구자철의 의지와 달리 다양한 실험이 독이 된 듯 했다. 구자철은 21일(한국 시각) 독일 볼프스부르크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호펜하임과의 2013~201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6라운드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지만, 올시즌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시작과 함께 이반 페리시치와 교체돼 나왔다.
구스타보의 퇴장 징계로 구자철은 파트너를 얀 폴락으로 바꿔 출전했다. 디에구 뒤에서 공수 조율의 임무를 맡았다. 전반 초반 구자철은 폭넓은 활동량을 뽐내며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구자철은 전반 15분 결정적인 패스 실수를 범하며 상대 선제골에 빌미를 제공했다. 공중볼을 헤딩으로 골키퍼에게 연결한다는 것이 모데스테에게 흘렀다. 이를 모데스테가 침착하게 성공하며 손쉽게 첫 골을 내줬다. 좀처럼 실수가 없는 구자철이기에 더욱 아쉬운 장면이었다. 사실 공격수와 수비수는 역할 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르다. 공격에 익숙해진 구자철에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은 여전히 낯선 것으로 보인다. 구자철은 전반 내내 만회를 위해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렇다 할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행히 볼프스부르크는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볼프스부르크는 전반 44분 오른쪽 진영을 돌파한 샤퍼의 패스를 올리치가 왼발로 밀어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역전을 위해 파상 공세를 펼친 볼프스부르크는 후반 3분 만에 올리치가 골을 성공시키며 호펜하임을 2대1로 꺾었다. 구자철은 독일 언론의 박한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구자철에 평점 5점을 줬다. 선수의 활약에 따라 1점부터 6점까지 책정하는 빌트의 평점은 낮을 수록 좋다. 구자철이 받은 평점 5점은 이날 양 팀이 투입한 24명의 선수 중 최저 평점이다.
결국 구자철은 잦은 포지션 이동이 독이 됐다. 일단 소속팀에 돌아온 구자철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다. 헤킹 감독의 뜻은 분명해보인다. 구자철이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구자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려는 홍 감독의 머릿속도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