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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체육@호주]패럴림픽 메달리스트=최고의 코치+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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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한국시각) 오전 8시 호주 시드니 올림픽파크 내 트랙경기장, '패럴림픽 레전드'가 가르치는 주말 휠체어레이싱 수업이 시작됐다.

아침에 내린 보슬비 탓인지 출석률은 저조했다. "보통 9명의 학생이 오는데 오늘은 3명밖에 안왔다." 패럴림픽에서 무려 9개의 금메달을 따낸 '철녀' 루이즈 소바주가 말했다.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앤지 발라드와 함께 매주 토요일 아침, 일반인, 유망주를 대상으로 1시간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앤지는 소리 지르는 역할이고, 나는 몸으로 뛰는 역할"이라며 웃었다.

▶패럴림픽 레전드가 가르치는 '멘토링' 육상

루이즈 소바주(40)는 명실상부한 '레전드'다. 100m부터 5000m까지 패럴림픽 휠체어레이싱 전종목을 석권한 전무후무한 선수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100-200-400m, 1996년 애틀란타에서 400-800-1500-5000m, 2000년 시드니에서 1500-5000m, 무려 9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앤지 발라드(31)는 2000년 이후 4번의 패럴림픽에 참가해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따냈다. 지난해 런던에선 200-400m 은메달, 4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엘리트 장애인 선수 출신인 이들은 주말마다 함께 일반 장애인, 선수 지망생, 유망주들을 가르친다. 소바주는 현역선수인 발라드의 코치이기도 하다. 발라드는 "평일엔 사제지간이고, 토요일엔 동료"라고 설명했다.

"준비, 출발!" 발라드의 구령에 따라 휠체어 선수 3명이 소바주와 함께 출발했다. 스타트 훈련으로 워밍업을 한 후 거리를 늘려나갔다. 100m, 200m, 400m를 돌고 난 후 기록을 확인했다. 3명의 학생 중 최연소인 12세 브래들리가 빨랐다. "잘했어! 브래드, 최고기록을 깼네!" 발라드가 칭찬을 건넸다. 소바주는 1시간반 내내 학생들과 함께 트랙을 돌았다. "턴, 파워업 등 테크닉을 보완해주고, 지치지 않도록 격려하려면, 바로 옆에서 함께 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레전드' 소바주의 첫 선생님 역시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었다. 1964년 동경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프랭크 폰타는 여덟살의 소녀에게 내재된 재능을 발견해줬다. 2011년 폰타 타계 직후엔 호주 패럴림픽 '명예의 전당'에 사제가 함께 입성하는 영광을 누렸다. 폰타와 루이즈가 함께 가르친 제자 매디슨 드 로자리오(20)는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에 최연소 출전해 은메달을 따냈다. 패럴림픽 레전드의 계보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소바주는 겸손했다. "프랭크가 나의 롤모델이었듯이 나도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스포츠를 통해 내가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의미다. 이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다."

▶장애인들의 희망체육 "꿈이 생겼어요"

호주는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장애인체육의 선진국으로 꼽힌다. 이 나라에서 장애인체육을 이끌어가는 힘은 국가 예산이나 중앙집권적 전시행정이 아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자원봉사, 모금, 기부 등 자발적 참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 있다. 스포츠의 가치를 몸소 경험하고, 스포츠를 통해 영광을 맛본 패럴림피언들 스스로 동료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한다.

패럴림픽 선수 출신들이 멘토로 나선 수업은 특히 동료 장애인들에게 효과가 크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47세의 여성은 미토콘드리아근병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장애가 생긴 후 한때 삶의 길을 잃었다. 휠체어육상을 시작하면서 마인드가 바뀌었고, 행복해졌다. 다시 좋아하는 일을 되찾게 됐다"며 웃었다. "나이가 많아 패럴림픽 출전은 힘들 것같다. 휠체어레이싱을 즐기고 있다. 내 연령그룹에서 최고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바주가 "꽤 재능 있다"고 귀띔한 12세의 브래들리는 휠체어육상을 시작한 이후 꿈이 생겼다. 지난 2년새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기록향상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이 "연습!"이라고 답했다. 시드니에서 2시간 남짓 떨어진 교외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아들을 실어나르는 어머니는 "브래드가 휠체어레이싱에 푹 빠져있다"며 웃었다. "운동을 하면서 상체와 척추가 강해졌다. 건강도 좋아졌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들이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브래들리에게 꿈을 물었다. "소바주, 발라드와 같은 훌륭한 패럴림피언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씩씩한 소년은 "3년 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만나자"는 말에 "오케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호주 장애인들에게 스포츠는 '메달'이나 '생존의 수단'이 아닌, '희망''꿈'이자 '치유'다. 시드니(호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