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가을야구 할 수 있겠지?'라는데 정말 짠하더라구요."
LG는 올시즌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즌 막판까지 유독 치열한 순위싸움 탓에 자력으로 4강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는 '매직넘버'는 아직 남았지만, 단독 1위를 달리고 있을 정도로 그 기세는 엄청나다. 가을야구를 넘어 한국시리즈 직행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김기태 감독은 말을 아낀다. 15일 잠실 NC전을 앞두고 만난 김 감독은 매직넘버나 포스트시즌 1선발 등의 이야기가 나오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사실 오랜 시간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한 우리 팀의 사정상 여전히 말을 아끼게 된다. 1경기, 1경기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웃었다.
김 감독은 자신 보단 선수들이 정말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매경기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지금 선수들이 말은 하지 않아도 다 보인다. 그래도 매직넘버가 줄어가는 걸 보면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뒤 김 감독은 취재진에게 전날 밤 퇴근길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김 감독은 전날 NC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한 뒤, 샤워하지 않고 곧바로 경기도 구리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동시에 한 차에서 내리는 가족을 발견했다.
사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김 감독은 이미 '스타'다. 김 감독의 아래층에 사는 가족도 LG 팬으로 잠실구장을 자주 찾는다. 아파트 내에서 알아보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김 감독은 "평소 같았으면 아이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줬을텐데, 어젠 샤워를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올라갔다. 못 알아보셨는지 그 가족도 옆 라인으로 들어가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이의 말을 듣고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아빠, 우리가 이겨서 이제 두산과 3.5게임차다. 가을야구 할 수 있겠지?"라고 말했다고. LG와 3위 두산의 승차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아이의 한 마디가 김 감독의 가슴 속에 작은 감동을 준 것 이다.
비록 아이에게 선물은 하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아이를 통해 LG 팬들의 염원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즌 막판까지 힘겨운 순위싸움을 하고 있는 그에게 정말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