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한국시각) 호주 시드니 올림픽파크 인근 호주체육교육대학(ACPE) 다목적 코트, 20여 명의 학생들이 안대위에 까만 고글로 눈을 가린 채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모두가 똑같이, 캄캄한 암흑속이다. 공격과 수비 훈련으로 몸을 푼 후 양팀 3명의 선수가 진지하게 서로를 마주봤다. 방울이 들어있는 오렌지색 볼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숨을 죽였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미래의 스포츠 지도자, 체육교사들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골볼' 수업에 참여했다.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또렷이 살려내야 한다. 상대방 골대를 향해 정확하게 볼을 굴리고, 상대의 볼은 몸을 던져 막아내야 한다. 집중력과 유연성, 동물적인 감각을 요하는 운동이다. 안타까운 헛발질과 허둥대는 몸짓에 때로는 탄식이, 때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비장애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 수업의 강사 티아니는 현역 '시각장애인' 국가대표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 호주 대표로 출전해 9위에 올랐다. "6m앞만 볼 수 있는 합법적 시각장애인(legally blind)"이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골볼은 패럴림픽 요소를 가미한 수업 과정의 일부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는데, 다들 골볼 수업을 좋아한다"고 했다.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에게 골볼을 배우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이날 수업은 호주장애인체육회와 커리큘럼 전문가인 브리짓 두바의 기획에 따른 것이다. 교사 출신의 두바는 패럴림픽 엘리트 선수들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호주장애인체육회와 학교체육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장애를 극복한 선수들의 삶을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공유하고, 한 코트에서 함께 땀을 흘리는 일은 의미있다.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비장애인보다 우월한 장애인선수들은 자부심과 함께 취업의 기회도 갖게 된다. '윈-윈'이다.
이날 골볼 수업에 참여한 3학년생 노먼 풀라드는 수강 동기를 묻는 질문에 "나중에 지도자가 됐을 때, 장애인은 물론 국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학생, 선수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눈이 안보이는 채로 공을 막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처음 느낀 경험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시각장애인선생님의 '시각'은 특별했다. "시각장애인 선생님들은 '다르게' 설명한다. 훨씬 잘 알아듣게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같다"며 웃었다. 풀라드가 극찬한 이 커리큘럼은 지난해 3월부터 호주전역 9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했다. 18개 대학이 파트너를 자청했다. 호주장애인체육회에는 골볼 실습뿐 아니라 각학교,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원하는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준비돼있다. 두다는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차세대 패럴림피언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패럴림피언'이라는 단어속엔 대회에 참가하는 엘리트선수뿐 아니라 장애인스포츠, 장애인올림픽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든 이들이란 뜻이 녹아 있었다.
호주는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장애인생활체육의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꼽힌다. 이날 함께 이들의 수업을 참관한 유준웅 재호주국민생활체육회장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결국 약자, 장애인을 얼마나 배려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현장에는 국내 장애인 생활체육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채재성 대한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위원회 위원장(동국대 교수)을 비롯, 임성하 부산장애인체육회, 박장군 광주장애인체육회, 최재섭 충남장애인체육회 생활체육팀장, 이우석 대구장애인체육회 찾아가는생활체육서비스팀장, 차성기 전남장애인체육회 대리 등 실무진들이 '장애인 선진국' 호주의 시스템, 생활체육, 학교체육, 정부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뜨거운 질문공세를 펼쳤다. 시드니=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