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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박경태의 호투, '희망고문'일까 '희망의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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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좌완투수 박경태가 드디어 '봉인'을 푼 것일까. 코칭스태프와 팬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모습이 11일 군산 SK전에서 반짝하고 나타났다.

박경태는 이 경기에서 생애 최고의 피칭을 했다. 프로 데뷔 후 9번째 선발 도전에서 드디어 5이닝을 넘어서더니 퀄리티스타팅(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도 너끈히 달성했다. 이날 기록은 7⅔이닝 4안타 1실점(비자책). 퀄리티스타트 플러스(선발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에 해당하는 호투였다. 이닝 뿐만 뿐만 아니라 투구수에서도 94개로 개인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아쉽게 승패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박경태의 호투는 KIA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5회초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며 피가 나면서도 호투를 이어가는 모습은 올 시즌 처참히 몰락한 KIA에 새로운 투지의 이미지를 불러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박경태의 이날 호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우선은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희망고문'에 빠지면 안된다. 어떤 투수든 몇 번은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모습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팀 전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박경태는 그간 팀 내부적으로는 매우 큰 가능성과 실력을 지닌 투수로 평가받았다. 왼손으로 150㎞의 공을 던질 수 있는데다가 선발 투수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스태미너도 갖춘 투수였다. 무엇보다 매년 스프링캠프에서 가장 뛰어난 구위를 자랑해왔다. 그래서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팀 전력을 구성할 때 늘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 시즌에 들어가면 그런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간계투로 나오거나 선발로 나오거나 상관없이 늘 결정적인 순간에 허무한 볼넷을 남발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야구계에서 칭하는 이른바 '불펜의 선동열'이었던 것이다. 연습에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다가도 실전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멸하는 투수였던 것이다.

다행인 점은 박경태가 11일 SK전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 이날 박경태는 위기에서도 침착했다. 볼넷을 남발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으며 오로지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러자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뛰어난 구위가 나타났다. '내 공이 통한다'는 자신감은 투수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한다.

자신감이 실력으로 선순환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박경태가 입증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단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과거의 안좋은 모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선순환의 구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박경태의 호투가 담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내년 시즌 선발 로테이션의 대변혁이다. 내년 시즌 변수가 너무 많다.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와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하고, FA 윤석민이 남게될 지도 알 수 없다. 또 내년에 만 37세가 되는 베테랑 서재응의 기량도 점검해봐야 한다. 남는 선발 자원은 김진우와 양현종 뿐이다.

결과적으로 KIA는 새로운 선발 자원을 발굴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신인 임준섭이나 시즌 중 트레이드로 데려온 송은범, 그리고 2년차 박지훈, 2군에서 콜업된 김윤동 등이 최근 선발 시험무대에 나서고 있는데, 박경태가 가세하면 또 다른 내부 경쟁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KIA의 전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어쨌든 박경태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그간 많은 실패를 통해 잃은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꾸준한 활약이다. 올해 남은 기간에 박경태가 다시 선발로 호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내년 시즌 '희망고문'이 아니라 '희망자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