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투수 이민호는 어찌 보면 '행운아'다. 고졸 신인으로 입단 2년차 시즌에 한 팀의 마무리투수를 맡았다. 중간계투로 시작해 매력적인 구위로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창단 첫 두자릿수 세이브의 주인공도 됐다. "좀더 많은 공을 던지며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김경문 감독의 의중에 따라 롱릴리프까지 경험했다. 1군 첫 시즌부터 다양한 보직을 오가며 풍부한 경험을 쌓은 것이다.
사실 김 감독은 이민호에 대해 "저 나이에 감독과 눈을 제대로 맞추고 인사하는 아이도 없다. 정말 크게 될 아이다"라고 말해왔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지만, 가볍지 않고 묵직함이 있다는 것. 포수 출신으로 수많은 투수들의 눈을 본 김 감독의 눈엔 이민호의 당당함이 보였다. 그 성격대로 마운드에서 피해가지 않고 승부하면 대성할 것으로 봤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NC에 우선지명된 이민호, 창단 첫 지명일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150㎞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우완 파이어볼러,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입단 직후 수술을 받았다. 왼 발목에 돌아다니는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 고교 때부터 작은 통증을 참고 공을 던졌지만,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미리 고쳐놔야 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러닝이다. 러닝을 통해 단단한 하체를 만들어야 상하체 밸런스가 맞아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2011년 말 수술과 재활로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지난해 퓨처스리그(2군)에서 맞은 프로 첫 시즌은 실망적이었다. 뒤늦게 합류해 9경기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50에 그쳤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이민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시즌 말미부터 조금씩 못 보던 공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카우트들이 주목했던 힘 있는 직구. 자신감 있게 던지면 분명히 프로에서 통할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올시즌은 중간계투로 시작했다. 처음 마무리로 발탁됐던 김진성이 불안하자 마무리 자리를 대체했다. 선발 이재학이 잠시 마무리로 전환했다 돌아간 뒤 다시 마무리를 맡았다. 최근엔 손민한이 마무리로 자리를 잡았고, 롱릴리프까지 경험했다. 지난달 22일 목동 넥센전에서 롱릴리프로 5⅓이닝 1실점하며 처음 5이닝 넘게 던져봤다.
1군 데뷔 시즌부터 마무리로 마음고생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는 여전하다. 이민호는 "요즘엔 뒤에 민한 선배가 계셔서 편안한 게 있다. 긴 이닝을 던지면서 투구 패턴도 바꿔봤다.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같아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고졸 2년차 신인이 마무리의 압박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호 역시 "마무리는 팀 승리가 달려 있다. 솔직히 중간에서 던지는 게 좀더 부담이 덜 하더라"라고 털어놨다.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만으로 좋은 피칭이 나오는 건 아니다. 예전엔 직구-슬라이더의 투피치 패턴이었다면, 최근엔 레퍼토리를 다양화했다. 시즌 전부터 연마했던 스플리터에 최근 김상엽 코치에게 전수받은 커브를 시험중이다. 조금씩 실전에서 쓰는 비율을 높여가면서 자신의 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민호 역시 "던져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일 창원 롯데전에선 3-2로 1점차 앞선 8회초 등판해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롯데 중심타선인 전준우-장성호-강민호를 1루수 파울 플라이, 삼진,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 세웠다.
14구 중 11구가 직구였다. 타이트한 상황, 결국 자신의 장기인 직구로 정면승부를 펼쳤다. 최고 147㎞의 직구는 힘 있게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나머지 3구는 최근 연마중인 커브. 롯데 타자들은 이민호의 강력한 직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김 감독은 이민호의 공을 하나하나 집중해서 봤다. 평소 김 감독이 중요시하는 '자신감'이 보였다. 피하지 않고 자신 있게 던지는 투수 본인의 공은 140㎞대 중반의 구속이라도, 150㎞대 강속구보다 더 위력적인 법이다.
김 감독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팀의 3연패도 끊은 기쁨도 있었지만, 무럭무럭 성장하는 이민호의 모습이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