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이었지만 제대로 된 예방주사였다.
홍명보호가 1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위 크로아티아와의 친선경기에서 1대2로 패했다. 기량 차가 존재했다. 뛰어난 체격 조건을 앞세운 상대의 강한 압박에 애를 먹었다. 끝내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크로아티아는 후반 19분 비다, 25분 칼리니치가 릴레이 골을 터트렸다. 경기 종료 직전 교체투입된 이근호가 헤딩골을 터트렸지만 더 이상의 시간은 없었다.
크로아티아의 화두는 역시 유럽파 점검이었다. 전반에는 2선 라인을 채웠다. 섀도 스트라이커에 김보경(잉글랜드 카디프시티), 좌우 날개에 손흥민(독일 레버쿠젠)과 이청용(잉글랜드 볼턴)이 포진했다. 후반에는 원톱 조동건(수원)이 빠지고 전반 수비형 미드필더에 선 구자철(독일 볼프스부르크)이 전진 배치됐다. 원톱에 섰다.
손흥민은 상대의 집중 견제에 좀처럼 활로를 뚫지 못하다 후반에 반짝했다. 한계와 가능성이 교차했다. '구자철 시프트'의 위력은 떨어졌다. 김보경도 활발하게 움직였지만 생산적이지 못했다. 공격라인의 유일한 위안은 이청용이었다. 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아닌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 뛰는지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6일 아이티와의 평가전(4대1 승)에서도 후반 3골을 모두 연출했다. 두 차례나 페널티킥을 이끌었고, 손흥민의 피날레골도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작품이었다.
이날도 이청용 홀로 빛났다. 클래스는 특별했다. 90분내내 공격을 주도했다. 볼이 가는 곳에는 이청용이 있었다.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았다. 전반 21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수비수를 제친 후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며 크로아티아의 흐름을 끊었다. 후반 15분과 17분에는 결정적인 골기회를 만들어내며 팬들을 열광케했다.
크로아티아 수비수들도 이청용에게는 번번이 무너졌다. 영리한 움직임과 개인기로 상대를 압도했다. 비록 골문을 열진 못했지만 가장 많은 골기회를 얻었다.
7개월 전이었다. 2월 6일 최강희호는 영국 런던에서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을 치렀다. 0대4로 대패했지만 이청용으로선 전환점이었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탈출했다. 부활을 알린 무대였다. 2011년 7월 31일 웨일스 뉴포트카운티와의 2011~2012 프리시즌에서 오른 정강이 경골과 비골이 골절된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의 출발을 함께 하지 못했다. 3차예선을 건너 뛰었다. A대표팀에서도 굴곡이었다. 지난해 9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전에서 15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그러나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부상 후유증이 그의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우즈벡전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후반 10분에 교체됐다. 10월 이란전에서는 후반 24분 교체투입됐다. 2경기에서 76분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이청용은 크로아티아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다시 날개를 달았다. 홍 감독과 첫 호흡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동고동락했지만 당시 홍 감독의 신분은 수석코치였다. 첫 무대에서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홍 감독도 경기 중간 이청용의 투혼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청용은 성실함의 대명사다. 흔들림이 없다. 축구를 대할 때 늘 진지하다. 승부욕은 누구도 못 말린다. 홍 감독이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물론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결정력이다. 홍명보호는 제로톱에 가까운 공격 전술을 전개한다. 원톱이 있지만 포지션의 경계는 없다. 포지션이 파괴가 화두다. 쉴새없는 포지션 이동을 통해 상대를 교란시키면서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좌우측 날개도 수시로 중앙을 파고들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청용도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소녀슛'이라는 '오명'이 있다. 힘없는 슈팅이 반복되는 바람에 붙여진 별명이다. 이청용도 잘 알고 있다. 문전에서 좀 더 침착하고, 집중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 한다. 반박자 빠른 결정도 필요하다.
비록 크로아티아에 다시 패했지만 이청용의 지능적인 플레이에 전주의 밤은 뜨거웠다. 전주=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