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가경(晩秋佳景).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라는 의미다. 잉글랜드대표팀의 늦깎이 스트라이커 리키 램버트(31·사우스햄턴)를 잘 설명하는 고사성어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리키 램버트(사우스햄턴)는 9일(이하 한국시각)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잉글랜드대표팀에 발탁됐다. 로이 호지슨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램버트는 이날 겹겹사를 맞았다. 생애 첫 잉글랜드 대표에 발탁된데 이어 셋째 딸(벨라)까지 얻었다.
그의 A매치 데뷔전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램버트는 15일 스코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2-2로 팽팽히 맞서던 후반 22분 웨인 루니(맨유)와 교체투입돼 3분 만에 결승골을 폭발시켰다.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기까지 15년이나 기다렸다. 리버풀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램버트는 1998년 16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블랙풀의 유니폼을 입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프로 데뷔 기회는 이듬해 찾아왔다. 램버트는 1999년 8월 7일 렉섬FC전에 후반 23분 교체투입돼 22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러나 시즌 내내 벤치만 달굴 뿐이었다. 1999~2000시즌 교체로 3경기를 소화한 것이 전부였다. 2000년 겨울은 램버트에게 혹독했다. 1+1 계약을 맺었던 램버트는 방출되고 말았다. 4개월 동안 자유계약 신분으로 지냈다. 이 기간 램퍼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식료품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1년 3월, 메이클즈필드 타운에 둥지를 틀면서 다시 꿈을 이어갔다. 램버트는 2001~2002시즌 드디어 주전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했다. 당시 40경기에 출전, 10골을 기록했다. 그러자 자신의 몸값도 생겼다. 30만파운드(약 5억원)였다. 램버트는 2002년 4월 스토크포트 카운티로 이적한 뒤 3시즌 동안 110경기에서 19골을 넣었다.
또 한 번의 위기는 2004년 찾아왔다. 하부 리그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지만, 리그2(4부 리그) 소속인 로치데일 밖에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 램버트는 와신상담의 계기로 삼았다. 욕심을 버리자 2005~2006시즌 50경기에서 22골을 기록했다. 2006~2007시즌 리그2 소속이던 브리스톨 로버스로 이적한 램버트는 이때부터 '승격의 신'으로 활약했다. 2007~2008시즌 로버스를 리그1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2009년부터 사우스햄턴 유니폼을 입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리그1 소속이던 사우스햄턴을 2011~2012시즌 챔피언십(2부 리그)로, 2012~201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로 승격시키는데 견인했다. EPL 승격 전까지 터뜨린 골만 3년간 88골이다. 무엇보다 EPL에서도 램버트의 파괴력은 통했다. 지난시즌 38경기에서 15골을 성공시켰다. 올시즌에는 5경기에서 3골을 기록 중이다.
리그에서의 맹활약은 잉글랜드대표팀 발탁으로 이어졌다. 호지슨 감독은 8월 스코틀랜드와의 친선경기에 이어 9월 몰도바, 우크라이나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두 경기에 뛸 스트라이커 자원 중 한 명으로 램버트를 낙점했다.
램버트는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라는 말을 확인시켜줬다. 스코틀랜드전에 이어 7일 몰도바전에서도 골을 신고했다. 특히 몰도바전에선 부상으로 결장한 루니와 다니엘 스터리지(리버풀)를 대신해 선발 출전해 확실한 해결 능력을 과시했다. 게다가 대니 웰백(맨유)의 멀티골을 모두 도우며 1골-2도움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램버트는 순식간에 '호지슨의 황태자'로 떠올랐다. 호지슨 감독은 "그의 움직임과 헤딩력은 출중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이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뒤에서 속삭이는 말에 고통을 받지만 램퍼트는 잘 견뎌낼 것이다. 여전히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