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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회 연속 노메달, 고교야구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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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교야구는 퇴보한걸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까.

한국이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세 대회 연속 노메달의 아픔을 맛봤다. 지난 2006년과 2008년, 2회 연속 우승을 하는 등 통산 다섯차례 우승과 동메달 1회에 빛나는 한국 고교야구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2010년 24회 대회 7위를 시작으로 지난해엔 개최국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5위에 그쳤고, 이번 대회 역시 5~6위전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숙적인 일본에게 0대10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이런 고교야구를 두고 수년 동안 각종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프로야구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반면, 아마추어야구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홈런 1개면 대회 홈런왕? 기본기 대신 작전부터 찾는 고교야구

가장 먼저 고교야구의 해묵은 문제, 나무 배트 사용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04년 대한야구협회는 고교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국제야구연맹에서 그 해부터 청소년급 이상의 모든 대회에서 나무 배트만을 사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국제경쟁력 강화란 미명 아래 알루미늄 배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알루미늄 배트는 가볍고 반발력이 좋다. 손목 힘만 좋다면, 손쉽게 담장을 넘길 수 있다. 배트 중심에 맞아야만 장타가 나오는 나무 방망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은 2004년에만 해도 나무 배트 도입을 반겼다. 알루미늄 방망이로 홈런을 펑펑 날리던 타자들이 프로에 와서 겪는 '적응의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봤다. 당시 아마추어 타자 중 일부는 정확도 부족으로 프로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무 배트 사용으로 파워에 정교함까지 검증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으로 흘러갔다. 나무 방망이를 쓰면서 장타가 사라졌다. 아마추어 때부터 힘과 정확도를 겸비한 완벽한 타자는 없었다. 어린 선수들은 프로에 가면서 점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맞았다. 알루미늄 배트로 제대로 된 타격폼부터 정립시켜야 했다. 지금은 아마추어 때부터 갖다 대는 타격에만 집중한다. 프로에 오면, 전부 다시 가르쳐야 할 판이다.

장타가 나오지 않자, 극단적인 스몰볼이 고교 야구에 유행처럼 번졌다.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대고, 선수가 해결하는 야구 대신 온갖 작전이 난무했다. 기본기를 익혀야 할 시간에 승리에 필요한 잔기술부터 익히면서 고교야구는 병들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 고교야구에서 한 대회에 2개의 홈런을 친 선수는 없다. 홈런 1개만 쳐도 '최다홈런상'을 타는 게 현실이다.

▶수준급 오른손잡이의 거세, 인위적인 우투좌타 양산

또한 나무 배트 사용은 인위적인 '우투좌타' 야수를 양산했다. 좌타석은 우타석에 비해 1루까지 두 걸음 정도 가깝다. 타격과 동시에 1루 방향으로 몸이 회전돼 빠른 스타트도 가능하다. 땅볼 타구 땐 우타자에 비해 좌타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발이 빠르면 내야안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발 빠른 오른손잡이들에게 우투좌타 변신을 권유했다. 이 역시 트렌드였다. 내야땅볼과 기습번트를 안타로 만들기 위해 재능 있는 우타자들을 일찌감치 '거세'시켜버린 것이다. 아마추어 때 훈련을 통해 좌타자로 변신은 가능하겠지만, 분명 부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제대로 된 타격폼 정립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이런 흐름은 프로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03년 등록선수 466명 중 18명에 불과했던 우투좌타는 올해 553명 중 69명에 이를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3.9%에서 12.5%까지 올랐다. 8명 중 1명이 우투좌타인 셈이다.

이번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12명의 야수 중 순수 왼손잡이, 즉 좌투좌타는 한 명도 없다. 내야수 4명이 좌타자인데 모두 우투좌타다.

▶순수함 사라진 고교야구, 벌써 마음은 프로에?

원래 아마추어 야구는 '순수함'이 매력이다. 승리를 향한 열정과 절실함은 그라운드에서 투지로 나타나게 돼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고교야구엔 그런 순수함 대신 '겉멋'이 자리잡기 작했다.

프로야구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고교 선수들 역시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야간 경기에 쓰지도 않을 선글라스를 모자 위에 얹고 수비에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경기 전 화장실에서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거울을 보는데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무작정 '헝그리 정신'을 강요할 일은 아니다. 한창 꾸미길 좋아하는 나이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선 안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20명의 선수 중 외야수 김규남(덕수고·고려대 진학예정)을 제외한 19명이 프로의 지명을 받았다. 당초 대표팀 선수들이 대거 프로 구단의 인정을 받으면서 이번 대회 결과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 지명은 선수들에게 태극마크의 책임감을 앗아갔다. 마치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이 남은 학교생활을 게을리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 선수들의 문제였지만, 자신의 실수나 팀 패배에 웃음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집중력 저하로 본헤드 플레이도 속출했다. 진정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행동들이 많았다.

프로의 부름을 받았을 지언정 아직 그들의 신분은 고교생이다. 신인지명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자만할 상황은 아니다. 만약 선수단 내 분위기 조성이 힘들다면, 신인드래프트 시기를 늦추는 등의 묘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