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은 스포츠 선진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최대 화두다. '운동기계'가 아닌 행복한 선수로 살아가기 위해, 은퇴 이후에도 또다른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힘들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스포츠조선은 체육인재육성재단과 공동기획한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시리즈를 통해, 1990~2000년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를 이끌어온 스타플레이어, 전현직 선수들의 '특별한 공부법'을 소개한다.>
"월요일, 수요일 저녁은 못먹어요."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송파구 방이동 체육인재육성재단 강의실에서 '사격왕' 진종오(35)를 만났다. 김밥 한줄로 저녁을 때우고 있었다. 6월 개강한 국제인재전문가과정을 4개월째 수강하고 있다. 해외 경기 스케줄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수업을 빼먹은 적 없는 모범생이다. 소속팀 KT에서 훈련을 마치고 재단에 도착하면 오후 6시 40분,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열띤 토론과 발표, 수업이 이어진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진종오는 사격 10m 공기권총-50m권총에서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에서 2관왕, 2연패를 이룬 유일한 선수다. 지난 7월 그라나다월드컵에서도 2관왕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이룬 성과라 더 값지다. 공부의 이유는 간단했다. "더 늦으면 안될 것 같아서요."
▶사격왕, 수업태도도 금메달
진종오는 체육인재육성재단의 국제스포츠인재전문과정을 신청했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인 선배 이은철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였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이 내놓은 선수 중심의 24주 단기 프로그램은 알찼다. 국제 스포츠 인재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글로벌 매너, 영어회화,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으로 짜여진 실무 중심 맞춤형 커리큘럼은 흥미로웠다.
이날 수업은 하태우 지씨엠씨 대표가 강의하는 커뮤니케이션 '프리젠테이션 실무' 강의였다. 선수들 각자가 자신의 발표 주제를 정해, 발표자료를 만들고, 매수업 실습을 통해 조언을 받아, 내용과 스킬을 함께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11주 과정이다. 진종오는 '사격의 대중화'를 주제 삼았다. 가까이서 지켜본 진종오의 수업태도는 열정적이었다.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김흥수 스키점프 코치, 유도국가대표 출신 윤지섭 등 '운동하는 학생'들과 함께 유쾌한 수업 분위기를 주도했다. 무대에서 인사하는 법, 자기소개하는 법, 청중과 눈맞추는 법, 인상적으로 말하는 법을 실습했다. 무대앞에 선 진종오는 반듯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진종오라고 합니다'보다 '진종오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교수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했다.
▶후배들에 조언 "영어는 꼭 배워라"
"모든 수업이 너무 좋다." 진종오는 실무 중심 수업에 만족을 표했다. "개강후 10주간 진행된 글로벌 매너 실습교육에서 인사법, 악수법, 대화법, 식사예절을 배웠다. 국가대표라면 경기장에서 전세계 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각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 유익했다"고 했다. 어려웠던 수업으로 "스포츠 심리, 통계 수업"을 꼽았다. "너무 어려워서 난리가 났다. 교육생들이 초토화됐다"며 웃었다. 기대되는 수업을 묻는 질문에 "모든 수업이 다 기대된다. 꼭 필요한 수업들인 만큼, 어려운 수업도, 쉬운 수업도 늘 기대가 된다"며 웃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사격을 시작한 진종오는 중학교 시절 반에서 10등안에 드는,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사격왕'의 집중력은 당연히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후배들에게도 공부를 권했다. 특히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면 영어만은 꼭 하라"는 조언을 건넸다. 진종오는 믹스트존에서 영어인터뷰를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국가대표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번씩 인재육성재단에서 지원하는 1대1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고 했다.
▶"몰라도 괜찮아, 나는 공부가 재밌다"
이날 8회차 수업을 진행한 하태우 지씨엠씨 대표는 진종오의 학구열을 높이 평가했다. "진종오 선수는 굉장히 꼼꼼하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지우개로 지워가며 필기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전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지사장 출신으로 대기업 CEO들의 프리젠테이션, 글로벌 매너 코칭전문가다. "운동하는 분들을 가르쳐본 것은 처음이다. 엘리트 선수 출신 학생들은 남다른 순발력이 있다. 프리젠테이션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위기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이 남다르다. 승부욕, 집중력, 피드백, 열정 모든 면에서 선수출신 학생들은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 교실에서 진종오와 일주일에 2번씩 마주하는 동료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소정호 대한체조협회 사무국장은 "현역선수로서 시간을 쪼개 수업에 나오는 만큼 하나라도 배워서 가려는 열의가 대단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큰 목표가 있는 만큼,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라고 귀띔했다.
런던올림픽 2관왕, 2연패를 이룬 세계 최고의 올림피언으로서, 진종오가 가는 길은 한국스포츠의 길이다. 선수로서의 길, 선수 이후의 길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아직 은퇴계획은 없다.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 3연패를 언급하자 "할 수만 있다면 영광"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선수 이후 좋은 리더의 길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후배들이, 내가 가진 모든 걸 갖고 싶어하고, 뺏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 운동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박학다식하고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교실에서 지켜본 '학생' 진종오의 장점은 선수 출신이되, 지레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사대 앞에 서면 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운동만 하던 선수들이 공부를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초심자 아닌가. 나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 재밌다"며 웃었다. 담대한 강심장을 가진 '사격왕'은 지금 열공중이다. 공부-운동에서 인생의 2관왕을 꿈꾼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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