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출구도 쉽게 보이지 않는 깊은 연패의 터널. 사방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경쟁자들은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KIA를 앞질러 나갔다. 이제는 오히려 뒤를 따르는 추격자를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차를 멈춰세웠다. 주요 부품들을 싹 교체했다. 운전법도 새롭게 바꿨다.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비난이 당장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재정비'는 KIA호를 다시 힘차게 달리게 만들었다. RPM을 힘차게 올린 KIA는 끝내 연패의 깊은 터널을 벗어났다. 16년만에 후반기 중간 순위 1위를 노리던 LG를 상대로 한 KIA의 시즌 최다 5연패 탈출기다.
▶연승은 어려워도, 연패는 순식간이었다
KIA 선동열 감독은 18일 군산 LG전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원래 연승은 하기 힘들어도, 연패는 쉽다. '어~어~'하다보면 순식간에 연패에 빠진다". 연패의 속성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한 두번 경기가 안 풀려서 지게 되면, 선수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져버린다. 그러다보면 본래 전력을 제대로 펼치기 힘들다. 승리의 기운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후반기 KIA의 패턴이 이랬다. 특히 지난 13일 인천 SK전부터 일이 꼬였다. 1회 1사 만루에서 이범호의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점프를 해 쭉 뻗은 SK 좌익수 김상현의 글러브에 빨려든 것이 마치 악재의 전주곡 같았다. 만약 이 타구가 펜스를 넘었다면 KIA는 연패에 빠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에서 KIA는 양현종을 내고도 SK에 2대9로 졌다. 양현종은 경기 후 부상이 재발해 재활군으로 내려가기까지 했다. 이런 안좋은 결과들이 반복되자 KIA 선수단은 투지와 자신감을 순식간에 잃어 버렸다.
이때부터 17일 군산 LG전까지 5연패가 이어졌다. 이 기간의 KIA는 투타가 계속 엇박자를 내거나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더 큰 문제는 이 급격한 하락세를 끊어낼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코칭스태프의 교체, 그리고 빌로우의 전격 투입
그렇다고 마냥 연패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즌 최다 5연패를 하면서 '4강 복귀'의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지만, 남은 시즌과 또 내년을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반격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KIA가 내린 결단은 '코칭스태프 교체'였다. 지난 16일 광주 두산전에서 7대9로 진 뒤 KIA 코칭스태프가 모였다. 연패의 이유와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 자리에서 나온 결론은 '코칭스태프 교체'였다. 웬만해서는 꺼내기 힘든 카드다. 올해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서 연패를 끊고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게 선 감독을 비롯한 KIA 코칭스태프의 의지였다.
1군을 지도하던 김용달 타격코치와 조규제 투수코치, 정회열 배터리코치, 김평호 주루코치가 2, 3군으로 이동했다. 코칭스태프의 대거 이동은 선수들의 눈빛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런 최후의 카드를 썼음에도 연패의 긴 터널을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코칭스태프를 변동하고 난 뒤 첫 경기였던 17일 군산 LG전에서 KIA는 3대4로 아쉬운 패배를 당해 연패 숫자를 '5'로 늘렸다. 변화의 효과는 한 박자 늦게 나타났다. 18일 경기에서 KIA는 8회까지 2-4로 끌려가다 8회말에 대거 5점을 뽑으며 극적인 역전을 만들어냈다.
이날 역전승에는 코칭스태프를 바꿀 정도로 간절했던 연패 탈출의지가 모두 나타나 있었다. 특히 2-4로 뒤지던 7회에 외국인 선발 빌로우를 중간계투로 투입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추격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쓰겠다는 벤치의 의지였다.
빌로우는 2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막아냈다. 결국 이 호투가 역전의 발판이 됐다. 추가 실점을 막은 KIA는 8회말 1사 1, 2루에서 신종길의 2타점짜리 동점 적시 2루타로 4-4를 만든 뒤 2사 1, 3루에서 안치홍의 역전 결승타가 터지며 전세를 뒤집었다. KIA가 5연패의 깊은 수렁에서 화려하게 벗어난 순간이다. 선 감독은 "선수들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줬다. 수고 많았다"는 짧은 소감을 남겼다. 그러나 이 짧은 소감 속에 담긴 연패 탈출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군산=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