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끝내 열어젖히지 못했다. 원톱을 비롯해 1.5선에 배치된 자원들까지 부지런히 상대 골문을 두드렸으나, 노크에 그쳤을 뿐이었다. 과정이 어떻든 '골'이란 결과로 말해야 하는 것이 축구이며, 4경기 동안 50개가 넘는 슈팅을 퍼부어 뽑아낸 한 골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해당 포지션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현재 유럽 각지에서 새로운 시즌에 돌입하고 있고, 이들이 합류해 다채로운 색깔을 내준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희망도 있다. 그렇게 팀 전체가 자신감을 얻고, 심적인 여유를 누린다면 나머지 자원들도 그 역할을 분담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득점 공격진이 집중포화를 맞는 동안, '하대성-이명주의 중원'은 또다시 희망을 피워냈다. 홍명보 감독은 레바논전-우즈벡전-이란전으로 이어진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에서의 최강희 감독과 다른 노선을 탔다. 유럽파 소집이 어려웠고, 평소 봐왔던 선수들로 팀을 꾸리다 보니 이번 페루전에 나선 중원도 이제 막 세 번째 경기를 치른 '초보'였다. 그랬음에도 내용은 참으로 훌륭했다. 동아시안컵에서 나왔던 기대 이상의 짜임새가 이번에도 빛난 것. 라인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땅따먹기' 마냥 공간을 장악해나갔고, 이것이 공-수 전체의 밸런스를 잡아주며 팀 전체를 탱탱하게 바꿔나갔다. 정말이지,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보다 더 매력 있었다.
이 짜임새가 좋아졌을 때, 큰 덕을 본 건 수비적인 부분이었다. 중원이 플랫 4를 감싸며 1차 저지선 역할을 확실히 해준 덕분에 황석호-홍정호 라인은 전반전만 해도 근근이 올라와 커팅에 동참하거나, 헤딩볼 경합을 해주는 정도면 됐다. 측면 커버도 참으로 성실하게 해냈다. 김민우나 이용이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경합에서 뒷걸음질치며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전에 중원은 이미 해당 공간에 부지런히 접근했고, 볼을 잡은 상대 공격수를 순식간에 둘러쌌다. 그렇게 상대를 죽은 공간으로 몰아넣으며 페루의 볼 흐름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었다. 페루가 전반전 끝물에서야 첫 슈팅을 쏠 수 있었던 것도 특정 부분에서 막혀버린 흐름이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수비적으로 안정된 흐름은 공격으로도 이어졌다. 중앙선 전후에서 볼을 잡은 하대성-이명주가 앞에 위치한 윤일록-이근호-조찬호, 혹은 오버래핑에 가담하는 측면수비 김민우와 이용의 위치를 미리 확인한 뒤 곧장 패스를 연결해 템포를 살린 것이 주효했다. 드넓은 시야에 멀리 볼을 운반하는 능력도 뛰어나 상대 측면 뒷공간으로 때려 넣는 장면도 나왔다. 패스 타이밍과 쇄도 타이밍이 무서울 정도로 '착착' 맞물려 돌아가자, 페루의 페널티박스까지 도달하는 점수는 만점에 가까웠다. 여기에 풀백의 오버래핑이 주춤하고 수비 전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기동력을 이용한 하대성의 전진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아군과 적군의 박스 사이를 폭넓게 움직이는 이 선수는 단언컨대 드리블을 치며 보다 도전적인 전진 패스를 넣어주는 데 최적화된 자원이었다.
슈팅 동작 중 쓰러진 하대성 대신 한국영도 시험해볼 수 있었다. 지난 중국전에서 박종우와 짝을 이뤘던 그의 새로운 궁합을 살펴볼 기회였던 셈. 파트너 이명주의 주위를 쓸어 담는 유니크한 스타일로 조용히 상대의 흐름을 관찰하다 어느새 그 패스 줄기를 잘라버리는 능력은 역시나 좋았다. 상대의 강한 전방 압박을 뚫고 볼을 운반하는 퀄리티는 경쟁자에 비해 다소 부족할 수 있어도 파트너가 공격 전개의 몫을 충분히 해줄 수 있다면 한국영의 가치도 급상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이 선수의 존재로 이명주를 소속팀 포항에서처럼 조금 더 공격적으로 활용해볼 수도 있었다. 다만 페루의 공세에 뒤로 밀리면서 공-수 간격이 벌어졌고, 분위기를 잡지 못한 상황에 체력적으로도 처져 이명주의 공격 재능을 맘껏 체크해보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제는 조합의 문제다. 홍명보호 출범과 함께 가동돼 좋은 모습을 보인 하대성-이명주 라인에는 '박혀있는 돌' 기성용도 있다. 박종우나 한국영도 호시탐탐 이 자리를 노리고 있다. 선수 개인적으로 모자랄 게 없었을지라도 그동안 홍명보 감독이 활용해왔던 4-2-3-1 시스템상 파트너와의 '호흡'도 고려해야만 한다. 즉, 하대성이 잘했다고 해서 무작정 기성용-하대성 라인을 가동했다가는 지난가을 우즈벡 원정에서처럼 씁쓸함을 맛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역할을 적절히 분담해 '1+1이 2보다 작아지는 참사'를 '1+1이 2보다 커지는 기적'으로 바꿔놔야 하는 것이 홍명보 감독의 과제. 다음엔 또 어떤 그림이 나올지 심히 기대된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