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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선수'세미나"金 못따도 '행복한 선수'로 살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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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트에서 진검승부를 펼치던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펜서들이 '공부하는 선수'로 돌아왔다. .

14일 오후 5시 30분, 제3회 한미대학펜싱선수권(KUEFI2013)에서 이틀간 열전을 펼친 한국과 미국의 선수들이 제주도 서귀포 한국국제학교(KIS) 세미나실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스포츠조선과 체육인재육성재단이 공동기획한 '대한민국 스포츠 백년지대계: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교육세미나가 열렸다. 대한항공 SK텔레콤(주) 로러스엔터프라이즈 등 기업들이 후원을 자청했다. 이번 대회에는 브랜다이즈, 브라운, 콜럼비아, 코넬, 노스웨스턴, 노틀담, 프린스턴, 스탠포드, 펜실베이니아 등 미국 9개대 선수단과 대전대 동의대 대구대 한국국제대 등 국내 펜싱명문 4개대 선수들이 참가했다. 미국의 스마트한 학생선수들과 감독들이 세미나 연사로 나섰다. 오래전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온 '스포츠 선진국'의 사례를 공유하고, 미국 명문대 감독과 선수들로부터 직접 '학생선수(Student-athlete)'들의 현실과 가야할 길을 들어보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스포츠 대회 직후 선수 및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세미나는 새로운 시도다.



▶공부하는 선수들의 증언 "운동이 잘되면 공부도 잘되더라"

세미나는 스포츠조선과 공동기획한 스키 국가대표 출신 스포츠 행정가, 김나미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의 영어 인삿말로 시작됐다. 8년 넘게 스키 국가대표로 지내온 김 총장은 대표적인 여성 스포츠 행정가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후, 끊임없이 학업에 매진해왔다. '공부하는 선수'들의 롤모델이다.

가장 먼저 프린스턴대 에이스이자 이번대회 여자사브르 2위 그레이시 스톤이 연단에 올랐다. "가족 전원이 공부하는 학생선수다. 언니 오빠도 프린스턴대 펜싱팀 선수이자 국가대표"라고 소개했다. 피자전단지에 끼어들어온 펜싱클럽 광고가 바꿔놓은 '학생선수'의 삶을 이야기했다. "펜싱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어릴 때부터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펜싱을 통해 스포츠맨십, 최선을 다하는 법, 현명하게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고 소개했다. 공부와 운동를 병행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결국엔 '시너지'가 됐다. "펜싱선수가 아니었다면 프린스턴대에 다니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브라운대 펜싱팀의 일원으로 제주를 찾은 '운동하는 학생' 차유진은 미국과 한국의 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미국에서 매학기 골프, 아이스하키, 축구를 하고, 대학에서 펜싱을 한다고 하면 한국친구들은 '프로선수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 여자친구들에게 '요즘 어떤 운동을 하니?'라고 물으면 당황스러워한다"고 했다. 운동을 졸업하기 위해 해야하는 필수과목으로만 인지하는 한국 유학생들의 현실도 언급했다. "미국학생들에게 운동은 어느 요리에나 항상 들어가는 소금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펜싱을 하면서도 공부만 하는 유학생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신기하게도 공부가 가장 잘됐던 시기는 펜싱이 가장 잘됐던 시기와 일치한다. 운동과 공부의 균형을 찾는다면 충분히 윈-윈게임이 가능하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학생선수 시스템을 통해 우리나라도 스포츠강국에서 스포츠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계 테니스 스타 알렉스 김(한국명 김경일·로러스엔터프라이즈 이사)이 무대에 올랐다. 2001년 전미대학테니스선수권 단식우승자, 2011년 스탠포드 명예의 전당 헌액자다. 3년간 프로선수로 활동한 후 뉴욕 월스트리트의 대형투자사에서 수조원대 거래를 성사시키는 성공적인 '금융전문가'로 일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25세때까지 변변한 인턴 경험도없었지만, 수년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온 노하우로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강한 승부욕과 정신력, 체력과 인내심, 시간 관리법을 아는 '학생선수'만의 경쟁력을 소개했다. "스포츠와 교육현장에서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의 좋은 점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공부하는 선수들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웰컴 어 챌린지(Welcome a Challenge, 도전을 환영하라)."

▶미국 명문대가 공부하는 학생을 좋아하는 이유?

선수들의 진솔한 스피치에 이어 명문대 펜싱감독들의 '멘토링' 시간이 이어졌다. 경기에 참가한 아이비리그 학생선수(Student-Athlete)들과 9개 명문대 감독들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했다. 스탠포드, 노스웨스턴, 프린스턴, 컬럼비아 등 감독 9명이 직접 한국학생 및 선수들의 질의, 응답에 응했다. "미국 명문대는 공부하는 선수를 왜 원하나" "미국 명문대가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감독들은 앞다퉈 '학생선수' 예찬론을 펼쳤다.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는 끝도 없었다. "학생선수들의 졸업률은 일반학생들의 졸업률을 상회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 학교도 기업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학생선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마이클 오프리치티그 컬럼비아대 감독은 "목표를 향한 간절함(desire)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never giving up)"을 강조했다. 아틸리오 타스 브라운대 감독은 "인성, 체력, 인내심, 성실성, 희생, 정제, 용기, 존중, 배려, 스포츠맨십" 등을 이야기했다. 이구동성이었다.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김영호 로러스엔터프라이즈 총감독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영호 감독님이 선수시절 공부도 열심히 하셨다면 무엇이 달라졌을 것같냐?"는 한 학생의 당돌한 질문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 감독이 진지하게 답했다. "운동에 최선을 다한 삶에는 후회가 없다. 하지만 23년전 공부할 환경이 충족됐다면 영어는 열심히 배웠을 것같다. 많은 유럽 펜싱인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나를 인정하고 알아본다. 그때 공부를 더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국위선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한 한국학생이 감독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영어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미국과 현실이 다르다. 미국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기회의 땅이지만, 한국선수들에겐 올림픽 금메달만이 살 길이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운동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졸탄 두다스 프린스턴 감독이 또렷하게 답했다. "올림픽은 4년에 한번 열린다. 실력을 갖춘다고 해도 심판에 의해, 부상에 의해, 운에 의해 금메달을 못딸 수도 있다. 그 하나의 가능성에 전체 인생을 걸 수는 없다. 평생 운동만 하던 스무살 선수가 올림픽 직전 부상으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된다면, 그 다음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나머지 삶을 살아지게 해주는 것이 공부다. 공부는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다."

세미나 후 감독, 선수, 학생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이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위한 백년지대계라는 점에 뜨겁게 공감했다. 국민행복시대, '행복한 선수'들을 키우기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