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핸드볼이 국제대회에 나설 때마다 돌파구로 찾는 것이 '한국형 핸드볼'이다.
기량과 체격 모두 유럽에 열세다. 국제핸드볼연맹(IHF) 남자랭킹 19위인 한국이 이들을 잡기 위해선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빠른 스피드와 조직력을 앞세운 미들속공과 찰가머리 수비 등 '한국형 핸드볼'이 승부수로 꼽혀 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의 영광부터 10년 동안 세계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그러나 2001년 프랑스 남자 세계선수권 본선행 이후 '한국형 핸드볼'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치밀한 분석에 열을 올린 유럽은 견고한 벽을 쌓았다. 2008년 김태훈 감독이 베이징올림픽 8강, 2009년 최태섭 감독이 크로아티아 세계선수권 본선행을 이끌며 잠시 부활하는 듯 했으나, 이마저도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5년 간 '한국형 핸드볼'은 정체되어 있다.
지난 10일부터 헝가리 부다요시에서 진행 중인 제5회 IHF 남자청소년선수권(19세 이하)은 한국 남자 핸드볼과 세계의 격차가 어느 정도 벌어졌는 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스웨덴 슬로베니아 루마니아는 오래 전부터 한국보다 한 수 위의 상대로 꼽혀 왔다. 이제는 숙적 일본 뿐만 아니라 오일머니를 앞세운 카타르마저 한국을 넘었다. 일본은 스피드와 조직적인 수비 등 한국형 핸드볼을 모방한 모델에 체격 좋은 선수들을 두루 배치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동유럽 출신 골키퍼와 센터백에 특유의 '침대 핸드볼'까지 가세한 카타르는 한국에 이어 슬로베니아까지 잡는 이변을 연출했다. 반면 한국은 카타르 스웨덴에 이어 튀니지에도 덜미를 잡히면서 3연패로 16강행이 요원하다. 성인 대표팀부터 청소년까지 각급 대표팀에 이어져 왔던 국제대회 부진이 재현되고 있다.
남자 핸드볼계의 위기를 논하는 목소리가 크다. 올해 치른 남자 세계선수권부터 주니어선수권 모두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마셨다. 결과 뿐만 아니라 내용도 참담했다. 매 경기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 속에 정신력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청소년대표팀 마저 고전이 거듭되자 한숨은 더 깊어졌다. 대회 참관차 헝가리에 머물고 있는 핸드볼계 관계자는 "이렇게 가다간 더 이상 한국 남자 핸드볼이 세계 무대에 설 자리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답은 명료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강조했다. "국제대회에서 단순히 경기만 치를 게 아니라 상대국의 전력을 면밀히 수집해 축적해야 한다. 상대를 모르고 국제대회에 나서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는 "면밀한 분석 뿐만 아니라 각급 대표팀의 체계적인 관리 등 연속성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의미없는 유럽 전지훈련을 반복하고 단발성 국제대회를 치르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소년에서 성인까지 오랜 기간 팀을 이끌 젊은 지도자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다요시(헝가리)=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